마무리.

by 지승유 아빠

그렇게 훌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전국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바라는 바가 몇 가지 있다.

먼저 가족 화장실의 필요성이다. 물론 휴게소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가족단위는 아니다. 그리고 가족단위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 중에 어린아이가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어린아이와 동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 화장실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화장실을 아주 훌륭하게 이용할 것이다. 아마 가족 화장실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조차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가족 화장실은 꼭 필요하다. 사실 깨끗한 화장실은 여러 가지로 효용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화장실의 원래 목적 이외에도, 수시로 손을 씻고 엉덩이를 닦을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광고에서 보는 것처럼 포크와 수저를 예쁘게 들고 식사를 하는 것이 우리 아이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맑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도 아니고 두 손으로 음식물을 뭉게 입으로 가져가서 절반은 입안에 넣고 나머지 절반은 얼굴에 문지르고 있는 아이가 내 아이였다. 어이가 없어하는 부모에게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음식물이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는 것은 보너스. 그 음식물이 기름기가 없거나 끈적거리지 않는 것이라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묻은 것이 초콜릿처럼 끈적하고 기름기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물티슈만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물이 잔뜩 묻은 아이를 씻기기 위해서는 부부 두 명의 협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죄책감을 애써 뒤로한 채,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공간도 그렇게 환경도 그렇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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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이다. 물론 이미 많은 휴게소에서는 많은 메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이 먹을 만할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글쎄. 사실 요새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지만 외식을 할 때는 거의 미취학 아동의 식단에 맞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얼큰한 어른의 맛을 그리워할 때도 있고 그런 날은 포장을 하거나 아이의 식사를 따로 포장해서 식당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의 외식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사실 휴게소라는 공간의 식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매운 라면이나 육개장이 주가 되는 휴게소에 도착하게 되면 부모로서 우리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는 공깃밥을 시켜 맨밥을 주거나 다른 간식거리로 식사를 대신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죄책감은 항상 생각 이상으로 컸다.


이렇게 두 가지 정도 휴게소에게 바란다면 욕심이 많은 걸까? 정말 그런 걸까?

하지만 보성 휴게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사실 나도 휴게소에서 가족 화장실을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았을 때의 감동은 어마어마했다. 작은 아이는 음식을 양손에 바르고 입에는 알 수 없는 혼합물이 흐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이 둘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깨끗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휴게소의 음식들은 어마어마했다.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메뉴가 있었고 심지어 꼬막이 들어간 메뉴는 맛있기까지! 원래 잠시 머무르다가 떠날 생각이었던 우리는 그래서 두 시간가량을 머무르고 다시 해남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심했다. 다음에는 보성에 꼭 가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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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해남은 생각보다 멀었다. 우리는 해가 진 뒤에 한참을 더 달려야 했고, 아내는 아이들과 아는 노래를 모두 부르며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 머물렀던 한옥에 도착했고 사장님 내외는 외출 중이셨지만 우리는 주인도 없는 집에 당연한 듯 들어가 짐을 풀었다. 휴게소에서 든든히 먹고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은 한 밤중이었지만 여력이 있었고, 아이들이 불빛을 찾아온 장수풍뎅이를 구경하는 동안 우리도 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아직 여름은 한참 남아 있었지만 밤은 차가웠고, 아이들도 우리들도 피곤했지만 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의 숙소는 어두웠고 우리는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더듬더듬 서로의 손을 찾아 장난치며 키득거렸다. 내 손끝에도 아이들의 부드러운 손과 저 멀리 아내의 머리카락이 느껴졌고,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방에서 어느 때 보다 함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처음에는 끝날 것 같지 않던 2주간의 여행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프지 않았고, 우리도 아프지 않았다. 아이들은 먼 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푹 잠들어 주었고, 밥도 잘 먹었다. 피곤하면 아무 곳에나 눕는 일도 있었고, 고집을 부려 곤란한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늘 적정선을 넘지 않고 우리의 말을 잘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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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이들은 또 한옥집 대청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큰 아이는 늘 품에 안고 자는 이불을, 작은 아이는 번개맨 인형을 들고 완도에 있는 해양 박물관과 장보고 기념관에 갔다. 싼 가격에 푸짐한 생선 정식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여행은 끝을 보이고 있었다. 배로 약 2시간이면 우리는 육지로 나왔던 때처럼 다시 제주도로 들어가게 되고, 늘 그렇듯이 일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장난치고 목마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시작해 서울, 대구, 경북, 경남 그리고 다시 전라도로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은 무모했던 여행. 아마 다시는 이런 일정을 잡지 않겠지만 혹은 더 길고 여유로운 일정을 잡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행복했고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우리 품에 안겨주었다.


평생 한 번뿐인 일들이 있다. 아마 이번 여행도 3살, 8살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로 돌아오는 일정도 평생 한 번뿐일 것이다. 다음에 우리가 멀리 돌아 나오는 여행을 기획할 때, 아이들은 훌쩍 성장해버렸을 것이고, 아마 이번 여행보다 훨씬 편하고 대화가 되는 여행일 테지만 그때의 여행은 이번과는 전혀 다를 테니까. 훨씬 여유도 있고 부부만의 시간도 많을 것이지만 이번과는 전혀 다를 테니까.


평생 한 번뿐인 여행이 끝나가고, 다시 평생 한 번뿐인 일상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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