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아내의 말을 들어야 했다.
맨 처음 계획은 그랬다. 통영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통영에 있는 유명한 케이블카를 탄 다음, 벽화마을에서 벽화를 구경하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동안에 재빨리 운전해서 해남에 도착하는 것.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의 계획은 허술하다.
숙소는 아쉽게도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깨끗했고 생각보다 넓었다. 늦은 시간 도착한 우리는 에어컨의 도움 없이도 멀리서 나는 바다내음을 맡으며 잠들 수 있었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 아침 창문 밖으로 대단한 경치 대신 통영의 빌라와 골목들이 보였지만 아침 공기는 시원했고 맑았다. 빌라들 너머 저쪽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원래 나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기상과 동시에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만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밥을 서둘러 먹였지만 아이들은 서두를 생각이 정말 1%도 없는 것 같았다. 속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숨고 뛰고 굴러다녔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는 전날 폭우를 뚫고 번개맨 체험관 등을 방문했다. 그래서 그날 입은 옷들이 모두 젖어 있었다. 옷이 젖은 채로 집에 돌아가는 날까지 둘 수는 없었다. 아마 옷에서는 어마어마한 냄새가 날 것이며 아마 아이들은 특히 큰아이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굴러다니는 아이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빨래방을 찾아 나섰다. 가장 가까운 빨래 방까지 약 4km. 나는 빨래를 돌리고 다시 건조기를 돌리며 세 번째 문제를 깨달아 버렸다. 생각보다 해가 너무 강했다. 이 상태로 케이블카 탑승은 불가능할 것이 뻔했다. 아이들의 피부는 늘 생각보다 약하고 우리는 통영의 경치를 즐기기도 전에 잘 익어버릴 것이므로. 건조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혼자 고민했다. 그리고 역시 평소와 같은 해결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금전적 위기를 몇 차례 겪었다. 처음 한두 차례의 위기는 아내와 함께 극복했는데, 아내가 두 번째 유산을 한 이후부터 나는 금전적 위기에 대해 아내에게 말하기를 꺼려했다. 사실 아내는 다른 걱정과 건강으로도 이미 지쳐있었고, 그런 아내에게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몇 차례의 도전과 시행착오가 지나고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는 상당한 결단이 필요할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내는 과감하게 쓸데없는 것을 정리하도록 했고,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조금의 시행착오와 약간의 반항이 있었지만 둘째를 낳은 이후 나는 더 이상의 의미 없는 반항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처럼.
나의 여행 계획의 몇 가지 아주, 아주 사소한 문제를 들은 아내는 건조기를 다 돌리고 속소로 복귀하도록 명령했다.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건조기를 돌리고 빨래를 단정하게 정리한 후 차에 싣고 숙소로 복귀했다. 역시 아내는 계획이 있었다.
숙소를 찾아보느라 지도를 몇 번이고 들여다봤고, 통영에 대해 수시로 검색을 했다. 사실 나의 검색 인내심은 별로 크지 않다. 아내처럼 끈기 있게 목표를 찾아가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라고 짐작되면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때문에 나의 정보를 스스로도 신뢰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미약한 끈기라도 놓지 않고 수많은 검색과 탐색의 과정을 반복했건만, 빨래방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불과 이십여분 사이에 아내는 숙소 근처에 '루지'라는 어마어마한 탈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숙소 근처에 어마어마한 지역 맛집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놓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무릎을 꿇은 내 등과 어깨에 올라타고 있었다.
사실 여행의 기간은 거의 2주나 되지만 이동거리가 상당히 먼 편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활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이들은 물만 보면 물가를 떠날 줄 몰랐기 때문에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도 어려웠고, 둘째는 아직 많이 어린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루지는 우리에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체험이었다. 산의 한 면을 온통 깎아 내리막을 만들었는데, 환경과 관련된 관점을 제외한다면 그랬다.
스키를 타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리프트에서부터 신이 나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함께 리프트에 탑승하니 땡볕이었지만 서로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즐거웠다. 등 뒤로는 통영바다가 보이고 아래로는 루지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고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보니 즐겁다.
생각보다 루지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길었다. 아이들은 엄마 혹은 아빠와 함께 탑승하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갔지만 큰아이도 둘째 아이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여러 번 탑승하고 점심을 위해 이동해야 했는데 아이들은 도무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리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차에 밀어 넣어서야 비로소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했다. 가격도 싼데 인심도 좋았다. 아이들은 철없는 질문에도 사장님은 곧잘 웃으며 대답해주신다. 밥을 먹이고 이도 깨끗이 닦여서 통영에 위치한 해양박물관으로 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어마어마한 경치 위에 박물관이 위치해있었다. 시원해서 좋았고 방문객이 적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박물관을 관람하는 동안 멀리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보면 바다가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데 아이들도 나도 바다를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늘 아침에 일어나면 멀리 바다를 보며 하루의 날씨를 짐작한다. 오후 해가 질 때도, 아이들과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한 밤중 빨래를 널러 나왔다가도 멀리 고기 잡는 배의 환한 불빛과 불빛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자욱을 찾기 위해 한참을 서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우리가 다른 도시에 여행을 와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찾고, 바다 내음이 나는 해안도로를 찾고,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보기 위해 한참을 앉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박물관 여기저기를 다니며 바다의 흔적들을 구경하고 아내는 그런 아이들은 쫓으며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결국 아이들은 바다에 대한 책이 있는 곳을 발견했고 큰아이는 아내에게 작은 아이는 나에게 책과 함께 안겼다. 그런 아내와 아이 뒤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늘 우리 곁에 머무는 풍경 같다.
둘째가 잠들기 좋게 카시트를 뒤로 살짝 눕혔다. 너무 티가 나게 눕히면 아이가 반항을 하기 때문에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는 것이 포인트. 우리는 여행의 막바지에 도달해 있다. 육지에서 처음 묵었던 해남의 그곳으로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 하루를 자고 나면 우리는 또 바다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아이들은 잠들어버렸다. 고속도로를 타고 우리는 또 한참을 달려야 한다. 아이들은 또 한차례 모험을 했고, 우리는 또 한 번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언젠가 아이들이 우리와 놀아주지 않는 날이 올 때, 마음속 깊이에서 꺼내볼 모습을 말이다. 물론 아내도 나도 그런 날이 가능한 멀리, 혹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올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남해를 거쳐서 보성 휴게소에 가깝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