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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나 Jun 16. 2024

내가 아는 그녀 (1)

내가 아는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녀들을 온전히 다 알지 못한다. 어설피 겪은 그녀들의 모습에 나의 상상 또는 유추가 더해져 만들어 내는 나만의 그녀들에 대한 감상임을 먼저 밝힌다.


내가 아는 그녀가 있다.


나와 그녀는 회사의 멘토-멘티로 처음 만났다. 사실 나는 당시 마뜩치 않은 부서에 막 발령받은 참이라 출근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너무 싫은 참이었다. 그때 신입이라며 들어온 그녀. 나보다는 족히 7-8센티는 더 커보이고, 쉽지 않아 보이는 세련된 인상에 차분하나 똑부러진 말투까지.. 친해질 수 있을까? 뭐하나 마뜩치 않았던 내 상황에서 그녀 괜시리 나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역시나 능력자였다. 그녀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나에게 결재를 요청해왔다. 아 이제 일을 좀 알려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결재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 인간은 뭐지? 결재문은 뭐하나 나무랄것 없었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완벽했다. 물론 다른 기관에서 경력이 있었다고는 하나 혹독한 신입시절을 보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 결재문 하나를 써내려가기 위해 회사 문서란 문서는 죄다 읽어보며 연구했을 것이란걸 말이다. 미지근하게 일하고 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굉장히 재밌있다. 어지간해선 배꼽잡고 쓰러져가며 크게 웃는 스타일이 전혀 아닌 나도 그녀가 쏟아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나도 배꼽을 잡고 쓰러지며 웃어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다음날 배에 근육통이 생기도록 말이다. 특히 그녀의 동생이야기를 들으며 눈물 흘리며 배잡고 뒹굴며 웃었던 일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그 감정과 무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또렷하다.


그녀는 소녀 같다. 어느날 같이 같은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길가에 주렁주렁 열린 귤을 보며 그녀가 감탄했다. "와~ 저 귤 너무 이쁘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오너먼트 같지 않아요~?!!"

그 자리에서 제주에 널린게 귤인데 저게 이쁘냐며 핀잔주며 넘어갔지만, 반짝반짝한 그녀의 말과 생각은 딱딱해진 나의 마음과 생각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리고, 섬세하다. 그녀는 늘 다른 사람 앞에선 강하지만 나는 그녀 안에 숨은 아이를 간혹 보곤 한다. 상처를 받았음을 나타내는 그녀의 씁쓸한 미소를 알아채는 사람은 과연 몇명이나 될까. 그러면서 그녀는 그 상처를 다시 숨겨내기 위해 더 웃고, 더 강하고, 더 애를 쓴다. 하지만 그 여린 내면엔 언제나 자신과 주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어 감히 그 상처를 드러내기도, 그렇다고 더 딱딱해지기도 힘든 그녀다. 그래서 나는 그녀앞에서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더 애를 쓰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가 고맙다. 언제나 적당한 선에서 사람과의 거리를 두던 나를 끊임없이 두들겨 밖으로 꺼내놓는다. 언제나 살갑게 대해주며, 간혹 동굴이 필요할 때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무심한 척 나를 내버려두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채찍질 하는 것도 그녀다. 가끔은 가족보다 더 편하게 내 마음 편히 터놓고 지내는 몇 안되는 동생으로 그녀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를 한다고 한다. 돌고 돌아 우리는 약 8년만에 같은 부서에서 다시 만났다. 나의 요청을 그녀가 흔쾌히 수락해줘 가능했다. 능력있고 재미있고 소녀같고 섬세하고 고마운 그녀는 요즘 나에게 선물같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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