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좋은 것들 중 내게 주어진 몫은 얼마나 될까. 지금 정도면 많이 가졌다. 내가 못 가진 것만 부러워하지 않기.
서문을 쓸 작업을 보려고 작업실에 방문, 작가를 만났다. 반가워하며 급히 근황을 공유했다.
작가:요즘 그림은 그리세요?
나:아 제가 그림… 미술??에 좀 삐졌어요
작가:(웃음)
무엇에 삐졌다는 대답을 세 번이나 했다. 내가 이것저것에 삐져 샐쭉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정신 차리고 괜히 새침하게 굴지 말아야지.
'내가 이것만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가진 사람에 대해 질투하거나, '넌 그게 있는데, 다 됐지 뭐가 문제야!' 하며 그 사람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쓰고 보니 참 부끄럽다.) 그만.
오랜만에 맡는 유화 냄새가 좋았다. 깊이 들이쉬었다. 맙소사. 그리워라. 그림에 둘러싸여 작업 이야기를 실컷 하니 흥분되고 재밌었다. 쉴 틈 없이 급급히 이야기를 나눴다. 아, 난 전시 서문 쓰는 일이, 누군가의 작업을 '그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보는 일이 엄청 좋다.
만족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제 내가 써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 됐든 만족스러운 글을 써내야만 하니까. 잘 써진다는, 내 마음에 든다는, 작가가 만족하리라는, 읽는 사람들이 좋아하리라는, 그 어떠한 보장도 없는 채로. 써내야만 하는 며칠을 앞두고 있는 거다. 떨린다.
집중해야 할 상황을 위기 상황과 오래 혼동해 왔다. '못 해내면 죽는다!' 이런 다그침과 각오, 밀어붙이기 없이는 집중하기 어렵긴 했지만… 난 위험에 처한 건 아니니까 너무 악물지 말고 그저 집중을 하자. 언젠가 이완된 몰입을 목표로 하며 일단 '위협은 느끼지 말자.'
오늘 만난 작가를 9년 만에 보는 거였다. 기껏해야 2~3년 전에 본 것 같은데… 여차하면 10년, 저차하면 20년.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다.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큰 게 아니면, '해 보고 아니면 말고' 이런 마음도 필요하다. 너무 오래 고민하거나 안 해보는 편이 손해가 더 크다
지난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조금 했고 글을 썼고… 치료를 했다. 병을 찾았다. 큰 후회는 없지만 더 이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10년 뒤 돌아봤을 때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면 좋았을까.
몸과 마음의 건강 보살피고, 가족과 잘 지내고. 여러 글을 많이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해야겠지. 그림도 그리고 싶다. 글쓰기 교실은? 시도라도 해 보는 게 좋을까? 거기에 쓸 에너지를 글쓰기에 써야 할까?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만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