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이소윤 개인전 - 아무데도 두지 않고
2026 이소윤 개인전 <아무데도 두지 않고>
3/14-4/18, 수-일 오후 1-6시 (월, 화 휴무)
이스랏 아트룸 서초대로 23길 15-8, 서울
해 질 녘 물가. 차가운 바람 속으로 새들이 일제히 몸을 들어 올린다. 중력에 끌어당겨지는 육신과 그에 맞서는 리듬. 새의 뼈는 비어 있다. 속이 빈 갈대는 땅의 깃털이다. 그들 안을 바람이 지나간다. 갈대와 새에 비친 빛으로 땅과 하늘이 연결된다. 수십만 쌍의 날개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푸드덕거림, 빛의 산란 속에서 이 순간 자체가 날아오른다.
‘나’는 그 안에 서 있다. 휘몰아치는 모든 감각 속에서, 압도되는 동시에 한없이 팽창한다. 오랫동안 붙들어 온 긴장과 도사림으로부터 드디어 놓여나며 어떤 더 큰 존재와 하나가 된다. 꿈에 그리던, 이 세계와 나와의 관계. 밝게 가득 찬 빛은 땅이자 하늘, 갈대이자 노을이다. 눈이 부시다.
겹겹의 파란색 뒤로 선명한 버밀리온이 떠오른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신비롭게 움직이는 듯한 이 가장 돌출된 부분은 빛의 마지막 조각까지 받아낸다. 몽환적으로 문질러진 푸른 기운은 대기에 질감을 주며 나와 하늘 사이의 깊이를 갑자기 드러낸다.
각자 아름답지만 서로 대비되는 색의 레이어가 쌓인다. 덮고 긁히고 다시 드러나며 한 장면을 만든다. 시공간이 자유롭게 섞이는, 이것은 실은 당연한 내면의 일상이다. 그 곁으로 짙고 두터운 붓질이 일렁인다. 어떤 색이 찍힐지 예측할 수 없이 던져진 둥근 자국은 윤슬 같기도, 누군가의 두터운 육신 같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사라지는 도중이다. 그 느림과 빠름, 길고 짧음도 자연의 시간 안에서는 모두 찰나일 뿐이다.
새와 날개를, 날개와 날기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을까? 난다는 것은 자유인가. 땅에 기대 사는 존재의 동경인가. 그들 또한 먹고, 자신의 몸을 살려내고 자취를 남기는 일에 매여 있다. 그들의 군무 또한 치열한 삶의 한순간이다. 우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스쳐 지나며 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누군가에겐 경이일까.
자유는 어쩌면 잠시 자신을 잊는 일이다. 끊임없이 안팎을 살피기를 멈추고, 마음을 아무데도 두지 않고 그저 온전히 있는 희소한 상태. 이런 순간은 각별히 마음을 내어 마음을 놓아 주어야만 마주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살아있기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분주하므로.
수많은 일에 걸리고 매이며 어느 날은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결국은 누군가를 찾는다. 나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존재를. 모두 같기만 하다면 새로 생겨날 것이 없다. 불통과 오해, 상처나 다툼도 삶의 재미, 아니 어찌 보면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너무 드물지 않게 서로 통하며,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하기에 가능한 감각이다.
새삼스러운 질문. 피부는 누구의 것인가. 나보다는 세상을 향해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은 나와 세상의 경계이자 접점인 듯도 하다. 잠시 멈춰 두 발을 땅에 붙여 본다. 다시 걷는다. 하나의 몸, 물질 덩어리, 인간, 동물, 무엇이든. 나는 지금 어떤 빛을 반사해 어떤 장면을 이루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