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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요 Sep 14. 2021

<문라이트> 리틀, 블랙, 그리고 샤이론

문라이트(2016)

우리는 쉽게 사람을 규정짓곤 한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마약중독자 엄마를 둔 흑인'과 같은 아주 짧은 문장으로. 그리고 문장 속의 몇 가지 단어들에 비추어 그 사람을 판단한다.

이런 방식은 아주 간편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은 들여다보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인격은 사라진다. 그 사람을 설명하는 몇 가지 단어만 남아서 이마에 낙인처럼 찍힐 뿐이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겨우 살아가는 아이에게 한 어른이 나타난다. 그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에게 아버지이자 삼촌이자 멋진 형이었다. 그리고 좋은 수영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는 "달빛 아래에서는 흑인 아이들도 똑같이 파랗게 보인단다."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무엇이 될지 결정하라고 말했다.

‘리틀'은 그 순간 '샤이론'이 되었다.


현실의 이야기가 늘 그렇듯 결국 손해 보는 것은 힘없는 사람의 몫이었다. 나쁜 놈의 뒷통수를 의자로 후려치는 일은 그가 해왔던 어떤 행동보다 주체적인 일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행동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그저 운명에 맡기게 된다. 그런 시간은 소년을 '블랙'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샤이론, 그건 네가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케빈은 샤이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저 이렇게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던 남자는 그 순간 다시 리틀이 되었고 블랙이 되었으며 샤이론이 되었다. 그리곤  가지 인격을  문장으로 뭉뚱그리는 세상에서 살아온 시간을 달빛 아래에서 위로 받았다.

짧지만 큰 위로를 받은 그는 그의 삶을 다시 살아낼 것이다. 푸른빛 문라이트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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