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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19. 2016

행복했던 이유 말고 행복한 이유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유

어느 날 문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려는데,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아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 말고,

가장 '행복한' 기억을 기록해두면 어떨까.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유가 뭘까?

저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유로 행복할까?

그래서 물어봤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유


- 나는 살아있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먼저 연락이 와서

- 화장실 갔는데 내가 제일 먼저 새 비누를 쓸 수 있어서

-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있다

- 회사 점심시간!

- 목욕 후 깨끗하게 빨아놓은 바삭한 속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

- 추운 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내방 전기장판을 틀어놓아서

- 아침 7시에 잤는데 4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났다. 밤낮이 바뀌지 않았다

- 예쁜 카페에 갔는데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  갓난아기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

- 수영하는데 멀리 나아가기 위해 물에서 음~~~ 을 오래하다가 턱끝까지 숨이 차면 파! 를 외칠 때의 희열

-  먹고 싶은 음식이 집에 들어왔더니 진짜 있다

- 내 편 내 가족이 있어서

- 내일 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공부할 수 있다. 레쓰비도 미리 사두었다!

- 내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럴싸한 위로와 멋진 조언이 아닌, 내 얘기를 그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 소중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 노래 듣고 있다가 아, 그 노래 듣고 싶다 했는데 바로 다음 노래가 그 노래다

- 공중화장실에서 큰 거 싸는 도중 휴지가 안 걸려있다는 걸 알고 혹시나 하고 뒤를 봤는데 변기통 위에 새 휴지가 있다

- 좋은 영화 발견! ‘하와이안 레시피!’

- 출근길, 외출 길에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걸을 수 있어서

-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네일이 있다. 오늘은 검정+핑크에서 올 자몽주로 색깔을 바꿔보았다

- 내 주변에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고 나를 아껴주는 가족이 있고 나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나를 지켜줘서

- 갓세븐 귀엽다... 연하는 진리야! 아이돌은 빛이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다!

- 자유의지가 있어서

- 의도치 않은 호의에 되게 감사하단 말을 들었다

- 가끔은 그냥 살아있다는 게 좋다

- 잘 데가 있다. 나는 내일 음식  사 먹을 돈이 있다. 나는 앞이 보인다. 두 다리가 있다

- 오늘도 룸메가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도 나 혼자 방 쓴다! 케케케

- 훈똥이 나와서

- 저번 주 며칠은 추워서 내 마음도 춥게 하더니 요즘은 낮엔 따뜻하다. 좋다

- 집에 오는 길에 비가 좀 오길래 카페에 가서 한 10분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비가 멈춰 있었다

- 노트북을 맘 놓고 사용! 어제 노트북 안돼서 잠시 얼마나 가슴 아팠던지ㅠ.ㅠ 다행히 어젯밤에 백업 다 해뒀다. 노트북 사랑해.

- 아침에 횡단보도 서자 마자 신호가 바뀌고 버스가 오더니 슝슝가더라구, 근데 환승하는데 가자마자 또 버스가 오고 버스 내리자마자 신호가 바뀌고 회사 20분 안에 감

- 요즘 하고 싶던 일어 공부하는데 일어 공부하는 순간이 좋다

- 나에겐 고추장에 재워놓은 고기, 간장 양념에 재워놓은 고기가 있다!

- 나 혼자 산다와 무한도전을 봤다. 다음 주 주말이 기다려진다.

- 운동효과가 나타나는 게 보여서

- 추운데 달콤한 커피를 마셔서

-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 별일이 없다. 별일이 없어서 무언가를  저지르자,라고 수첩에 써놓았지만. 이게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별일 없이. 난 누군가에게 해코지당하지 않았고 아프지 않고 살고 있다. 

-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한 순간들을  묻기 시작하면서 왜 이걸 이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유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별 일 아닌데 뭉클했다. 별 일 아닌데 행복했다.

다들 어쩌면 별 일 아닌 것들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행복이 별 게 아니라는 말은 백 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당신들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유'를 이야기해줘서, 들을 수 있어서, 

또 이렇게 써 내려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행복은 정말 멀리 있지 않았다. 늘 가까이 있다. 

때때로 불행한 것들에 가리어져 멀리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불행한 현실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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