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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세권 Jan 13. 2019

2.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를 만나기 전에

 아! 원래는 매주 금요일마다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오늘 이 글을 올리지 않으면 잠을 못잘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 규칙을 시작부터 깨볼까 합니다. 심지어 2회에서는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에 안성맞춤인 책을 소개한다고 예고까지 해놓고선, 이게 뭔가요...(그럼, 이건 1-1회로 해두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책을 소개하지 않으면 불면의 밤을 보낼 것만 같은 엄청난 흥분 상태라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와 아주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네요.(저자가 영화감독이거든요.) 게다가 첫 회에서 부끄럽지만 용감하게 올려본 저의 독서노트 2018년 마지막 기록의 바로 그 책입니다.

이경미 영화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c. arte

 우린 못하는 게 없는 OOO 친구들

 그럼 우선 저의 흥분상태에 대해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죠.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을 읽은 것은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아니고, 그 전 날이었어요. 증쇄에 증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답게 눈물 쏙 빼는 웃픈 농담으로 가득한 재미있는 책이었죠. 저는 약간 한 가지에 빠지면 우물 파듯 파보기 시작하는데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가능한 알아보는 거죠. 책 <잘돼가? 무엇이든>이 재밌어서 영화 <잘돼가? 무엇이든>을 봤고, 감독님이 출연한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고 보았습니다. 물론 감독님이 연출하신 <미쓰 홍당무><비밀은 없다>는 진즉에 보았죠. 안면홍조증이 있는 저는 포스터 속의 공효진 씨를 보고 속으로 감독님을 욕했습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건 너무 심했...(공효진 씨가 괜히 운 게 아냐)


  아무튼 문제는 유튜브에 올라온 팟캐스트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이경미 감독님 인터뷰 영상에서 발생합니다.

 바로 이 영상인데요.  https://youtu.be/gtVbObxxAow

 5:40 쯤부터 들어보세요.      


 김하나 씨가 구정아 PD를 만났는데 “강강술래 한 이야기를 정말로 쓸 줄은 몰랐다”고 했다는 거에요. 이 부분에서 제 머릿속은 ??? 이렇게 됩니다.

 

“아니, 좀 전까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9...구..구정아 피디??”

 책을 다시 훑어봤는데 강강술래의 기역 자도 찾지 못했어요.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 책을 먼저 읽은 동친(1회 때 소개)에게 물어봤죠.

 “김하나의 측면돌파에서 이경미 감독이 구정아 PD랑 강강술래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억나?”

 “응, 그거 김종관 감독이랑 같이 한 거잖아.”     

 맞다! 맞어!, 종관 감독 이름이 나왔었어.      


 그 날부터 저는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잘돼가? 무엇이든>을 훑게 됩니다. 오직 저, 강강술래 장면을 찾기 위해서 말이죠.

 저의 연말연시는 밤마다 읽은 책을 또 보고, 보고 또 보며 지나갔습니다. 2019년이 되어서도 기억의 체증은 가시질 않았고, 불면의 밤과 더불어 변비까지 얻게 되었어요. 오기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포기할 수 없다!!

 열흘이 지나도록 낫지 않는 이 불치 아닌 불치병에 화가 나고 만 저는 sns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올린 글.     

트위터는 한 번에 140자의 글을 올릴 수 있고 타래로 글을 엮을 수가 있어요. 위에서부터 아래로 읽어보세요.
랜선 친구들이 "강강술래를 찾아야 한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리트윗과 좋아요를 눌러주었습니다. ^^
'공손한 종이'님이 결정적 힌트를 주셔서 찾았습니다! 구정아 PD와 김종관 감독과 함께 셋이서 강강술래하는 장면을!!!!! 233쪽에 있었어요
이북으로 읽으신 분의 제보. 이북에는 224쪽이랍니다!

 역시 sns 집단지성은 위대한 것입니다! 열흘 넘도록 낫지 않던 이 꽉 막힌 답답함, 기억의 체증, 변비를 한 방에 낫게 해준 랜선 독서친구님의 힌트. (리트윗과 좋아요로 마음 써 준 모든 랜선 친구에게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구정아 PD와의 강강술래 장면을 찾았습니다!!!

 뜻밖에도 결혼준비와 남편 이야기로 가득했던 3부-어쨌든, 가고 있다의 끝자락에 있었어요.     

팟캐스트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김하나 선생님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랜선의 독서 친구들과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잘돼가? 무엇이든> 달달 외우겠어, 정말


 밤마다 기도하듯, 오늘 밤에는 강강술래를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면서 이 책을 읽었더니 이경미 감독님에 대해서라면 자판기처럼 툭툭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미 감독님은 2녀 중 첫 째로 태어나 대학에서는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잘 나가는 벤처기업에 다니다가 퇴사. 한예종에 입학해 졸업작품으로 <잘돼가? 무엇이든>을 찍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화계 데뷔. 데뷔작 <미쓰 홍당무> 촬영 당시 서대문에 위치한 모 레지던스(저, 여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에서 원수같은 성추행 상사를 만나게 되고....(비굴...이 부분은 뺄게요, 감독님...체면... 박대리도 뺐다.)큰 불구경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어느 미친놈이 남대문에 불을 지른 것이었음.  뼈가 부러질 정도로 요가에 열심이며 쾌변생활 중인 동생과는 다르게 장에 문제가 많고, 그래서 출근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설사를 할 뻔 했으며 시나리오를 변비 앓듯이 쓰고...13살 연하 남편을 만나(심지어 남편이 먼저 반함!!)뇌가 없는 잠 몬스터로 불리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참, 아버님은 우리가 목소리를 들으면 한 번에 알아챌 수 있는 KBS<동물의 세계>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성우시다. (어쩐지...감독님 딕션이 남다름) 어머니는 부분 틀니와 부분 가발을 소중히 여기시는 꽃여성으로 믿음이 깊은 천주교 신자시며 괄약근운동, 수맥으로 염증잡기 등 민간요법의 달인이시고 무엇보다 딸을 정말 사랑하는 현명한 분이시라는 것.        


감독님, 잘 돼가요? 잘 돼가는 거 맞죠?


  이건 그냥 하는 농담이지만

“내겐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원래 없던 증상이라서 혹시 치매가 왔나 가끔 걱정될 때도 있다.”


 그러고 보니 감독님의 이야기 세계에 늘 저와 닮은 사람이 있어요.


 안면인식장애의 나

 혼자 살 팔자라는 사주의 나

 점보는 걸 좋아하는 나

 인생에 큰 굴곡은 없지만 미래가 어두운 나

 자웅동체 아메바처럼 혼자 씩씩하게 살기로 한 나

 변비를 달고 사는 나

 출근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설사할 뻔 한 나

 안면홍조증의 나

 우울증이 무서운 나

 그리고 어둡고 무서운 밤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엄마     

(소름끼치게 닮은 부분이 있지만 내 정체가 들통나면 안되니까 이 정도에서...)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또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내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한 나날이 내가 보낸 지난날에 대입된다. 어쩜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졸업 당시 IMF가 터짐) 8시 반 출근, 밤 11시 퇴근 (출퇴근에 왕복 4시간 소요), 휴가라곤 1년에 3박 4일 뿐, 이런 초인적인 스케줄을 버텨야했고 외국인 상사의 성추행을 견뎌야했다. 통장에 돈이 쌓여도 돈을 쓸 시간이 없었던 회사생활을 때려 치고(!!!) 원하던 영화과에 진학했으나...일이 쉽게 풀리면 인생이 아니지. 낙관보다는 비관하는 법을 알려준 교수님 밑에서 수학하며 변비 같은 창작의 고통 끝에 졸업 작품으로 빛을 보고 잘 될 줄 알았지. 하지만 흥행 스코어보다는 평단이 주목하는 숨겨진 걸작을 줄줄이 만들다가 열심히 해온 요가 덕분인지 대중의 인기도 얻고 이성의 사랑도 얻고, 드디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써냈다!     

 여러분, <잘돼가? 무엇이든>을 읽으면 학창시절 귓가에서 노래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 구마사제와 담판을 짓게 되는 여고생 경미를 만날 수 있고요, 롯데백화점 분당점에 가기 위해 수내역 행 마을버스를 기다리다 허리가 부러진 할머니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정자역 행 마을버스를 타게 되는 이경미 감독을 볼 수도 있고, 이제는 ‘돈 버는 일은 중요한 거’라며 큰 깨달음을 얻은 경미 친구도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 “좌청룡 우백호 용호상박” 그러면서 웃는 두 스님 사이에서 “혼자 흑소”하는 웃음으로 진정한 위로를 주는 이경미 씨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경미 감독님의 요가 효과를 믿습니다! 뭐든지 잘 되게 해주는 마법의 운동.      


 이 글은 <잘돼가? 무엇이든>

137쪽 “올해의 결심. 별로인 것을 두려워 말고 쓸 것.”

141쪽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위 문장에 용기를 얻어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경미 감독님이 독서실(태음인방)에서 멋진 작품을 쓰셨듯,

저는 독서실 자유석에서 이 글을 썼으며 옥수수수염차 협찬(무료로 한 잔 마심)을 받았습니다.

(독서실은 내 돈 내고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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