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며
기회는 균등할까?
현대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지위와 소득이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다. 교육은 상류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균등하니 능력껏 올라가라 하는데, 정말 기회는 균등할까?
능력을 판별해 준다는 대학에선 입학기부금제도, 동문자녀우대, 특기자우대 편법 등이 있고, 학력평가시험 자체도 부유층의 과외수업 등으로 평등하지 않고, 봉사활동이나 여러 스펙도 부모가 만들어줌으로 평등하지 않다.
이것이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한 미국의 현실인데, 놀라울 만큼 우리나라와 판박이다.
우리나라도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갈수록 사교육은 심화되고, 자소서, 봉사활동, 여러 스펙들은 학원에서 관리된다. 대학에서는 실력과 부를 갖춘 특목고 아이들에게 가산점을 준다. 이 모든 것은 돈 없이는 어렵다. 그럼에도 자신의 재능만으로 성취한 능력인 듯 포장된다.
결국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과거의 인종과 성에 대한 차별은 완화되었지만, 학력에 의한 차별은 심화되었다.
상위권 대학이 출세의 선별기가 된 마당에 교육에 대해 말하자면, 공부에 대한 의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샌델은 가족문화에 의해 의지도 키워진다 했지만 형제끼리도 의지는 다르다. 결국은 각자가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상위권 대학에, 그리고 특정 학과에 초첨을 맞춤으로써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중, 고등교육으로 기술을 익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일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 그것에 대해 적절한 보수를 줄 수 있는 사회. 직업에 따른 소득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사회라면 모두가 행복에 좀 더 다가가지 않을까?
이러함은 정치정책이나 세금제도등에 의해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 본다.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한 사회: 뉴질랜드의 기억
소득격차가 크지 않았던 나라, 뉴질랜드가 떠올랐다.
오래전 언니가 아이들 영어교육 때문에 뉴질랜드에 가서 몇 년간 살았다. 그때 나도 한 달 정도 언니집에서 묵었던 기억이 있다.
뉴질랜드는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자연 속에 인구밀도가 희박하여 낮에도 주택가에서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시내를 나가도 주로 낮은 층의 건물에 상가들이 있다. 반면에 대형마트는 엄청 크고 물건의 종류도 다양한데 무엇보다 농산물과 육류 등 생필품이 무척이나 저렴했다. 어느 정도의 수입만 있다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빈부격차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의사든 수리공이든 수입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뉴질랜드는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고소득자에게는 최고 세율(약 39%)이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직종 간의 세후 실수령액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해서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고소득자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기술을 익혀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평일 낮에도 해변가나 분위기 있는 카페에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한가하게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인구밀도가 낮아서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지원금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자녀가 3~4명 이상인 저소득 가구는 보조금 총액이 웬만한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급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을 안 하고 부부가 같이 아이를 돌보는 가구가 생기기도 한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더 높은 연봉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인재들과, 복지에 의존해 일을 안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뉴질랜드의 국가적 고민거리라고는 한다
사람들의 인식도 중요한데 뉴질랜드 사회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를 성공의 척도로 보는 이들이 많다. 공부를 많이 해서 얻는 명예나 부보다, 스트레스 적은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시대에 살더라도 나라의 정책에 따라 우리의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각각의 제도에 장단점이 있기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말하기 어렵다. 국가정책에 따라 우리의 삶이 치열한 경쟁 속에 머무를 수도, 여유로운 삶 속에 머무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인 큰 틀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구조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좀 더 자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나의 재능은 ‘시대’라는 행운을 만난 결과일 뿐
샌델은 묻는다. 과연 자신의 재능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냐고. 나의 재능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나라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어쩌면 우연일지 모른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능력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승자의 오만에서도, 패자의 굴욕에서도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해서 복지국가나 공동선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