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방법 알려드릴까요?
언덕과 바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어떤 미사여구보다 샌프란시스코를 참 잘 표현한 말 같다. 돌로레스 파크로 가는 길 역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올라가고 내려가고의 반복이다. 언덕 꼭대기에서 맞이하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전경이 눈과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다. 돌로레스 파크까지는 두 블록을 더 가야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 얼른 차를 댔다. 차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이 성에 안차 걷는 수고를 하더라도 꼭 내려서 보고 싶었다. 분명 시동을 끄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단단히 잡아 올렸건만 차는 금세라도 언덕 밑으로 굴러갈 것만 같다.
“엄마 우리 차 이렇게 대면 위험한 거 아니야?”
“엄마 무더워~”(진우는 아직 ㅅ 발음이 안된다.)
소윤이는 차를 걱정하고 진우는 자기를 걱정하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주차 잘 했어. 안 미끄러져."
“자~ 모두 내리자.”
유모차를 꺼냈다. 진우는 차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징징징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과 함께 카싯트에 몸을 파묻는다.
'침착하자. 절대 나가서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는다!!' 오기 전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며 심호흡을 했다. 진우를 어르고 달래 겨우 유모차에 태웠다. 짐을 챙기고 드디어 출격 완료.
돌로레스 파크 쪽을 바라보니 언덕 밑으로 펼쳐지는 샌프란시스코의 황홀한 전경에 턱이 먼저 반응해 입이 벌어졌다.
"이야~"
이 풍경을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멋지게 찍을 수 있을까. 가파른 언덕길. 밑으로 보이는 넓고 푸른 잔디밭. 그 너머에 뾰족뾰족 선 높은 건물들. 그 뒤로 보이는 푸른 바다. 시종일관 표정으로 짜증을 발산하고 있는 진우에게 사진 찍자고 하면 짜증이 울음으로 폭발할 것만 같아 소윤이만 모델로 세웠다. 가파른 언덕이 잘 나오기를. 그 밑에 공원도 잘 나오고. 그 너머 샌프란시스코 전경과 그 뒤의 바다도 잘 나오기를.
"자~ 여기 보세요~치즈"
사진 제목 1.
[우리 집 앞 골목에서]
사진 제목 2.
[꽃보다 소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거기 서봐." "뒤로 뒤로""옆으로 옆으로"
"오케이, 여기 보고~".
찰칵찰칵찰칵
찰나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내 컴퓨터 사진 폴더에도 만장 이상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살면서 순간순간 소중한 기억들을 저장하고 싶어서 찍은 내 삶의 기록들. 사진을 보면 그때의 황홀한 풍경이, 행복한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때 느꼈던 그 느낌의 백분의 일 아니 만 분의 일만큼으로.
그래서 여행을 한다. 백만큼 만만큼 온전히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서. 티브이나 책으로 무슨무슨 기행이니 무슨무슨 여행이니 하는 것들을 아무리 봐봤자 그 느낌이 백분의 일도 안된다는 걸 여행한 사람은 안다. 사진은 그때의 기억을 머리로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느꼈던 그때의 그 감동까지 소환할 수는 없다.
두 블록을 내려가 공원 입구 근처에 다다르니 금색 소화전(Golden fire hydrant)이 있다. 구글 지도에서 카메라 표시가 있길래 '뭐야~?'하고 찾아보지 않았으면 그저 길에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소화전.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그 동네 주민들을 지켜준 유일한 소화전이라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금색으로 칠하는 행사를 한다고 구글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지도에 카메라 표시가 나온다. 사진 찍으라고.
이 소화전이 소화전계의 금메달감인가 보다. 묵묵히 자기 일을 잘 했다고 금색으로 칠해주나 보다. 나도 금메달을 받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 키우기, 내조하기, 자식 노릇 하기, 글쓰기, 하나님 믿기 등등인데 그중에 뭐라도 하나 금메달을 받고 싶다. 묵묵히 내 일을 하고 오래도록 회자되며 지지와 찬사를 받고 싶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저 뒤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전경을 배경으로 초록의 잔디밭에 몇몇은 벗고 누웠고 몇몇은 껴안고 있다.
"와우~"
샌프란시스코 전경이 멋진 건지 잔디밭이 멋진 건지 사람들이 멋진 건지 그 모든 게 절묘하게 어울려 황홀한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소진 남매도 맘에 들었는지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엄마~ 우와~어머!! 저기 놀이터!!"
역시 애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황홀한 경치보단 놀이터다.
소진 남매는 놀이터로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공원지킴이들이 카트를 타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어서 그런지 샌프란시스코의 시민의식 덕분인지 공원은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놀이터 옆에 있는 화장실까지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공원 대비 깨끗했다.
한바탕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피크닉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이제 싸온 간식을 먹고 그림을 그릴 차례다. 짐을 쌀 때 항상 그림도구를 챙긴다. 소윤이가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 보고 느낀 대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지만 그래서 더 동경해왔던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시선으로 원하는 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조금 더 풍성한 삶이 될 것 같다. 그러한 삶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큰 개를 데리고 온 꼭 껴안고 있는 커플 옆, 열심히 무엇인가를 썼다 지웠다 하는 여학생 뒤, 혼자 맥주인지 와인인지 마시고 엎드려계신 할아버지 옆, 그리고 우리가 앉을 만한 크기의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팜트리 밑에 돗자리를 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샌프란시스코의 높은 빌딩들이 삐죽삐죽 솟아있고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언덕에 앉아 우리 자리 옆에 껴안고 앉은 커플이 맥주캔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부러웠다. 껴안는 거 말고 단지 맥주가.
공원 입구 표지판에 노 스모킹 노 알코올이라고 쓰여있었건만 곳곳에 나부끼는 하얀 연기들과 맥주캔이 젊은 샌프란시스코의 자유로운 영혼을 말해주는 것 같다.
오후 4시. 바람의 샌프란시스코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점점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고 안개가 내리깔리고 있다. 오늘의 두 번째 목표지로 출발했다. 타르틴 베이커리(Tartine bakery)에 가볼 차례. 4시 30분에 갓 구운 빵이 나온다니 맞춰서 갈 계획이다.
공원을 빙 둘러 내려가서 공원 끝에 다다라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두 청년이 나무 위에 착륙한 드론을 꺼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두 청년의 애가 타는 마음도 모르고 우린 그 옆에서 "여기 봐 여기 봐. 옆으로. 오케이. 치즈!" 하며 눈치 없이 사진을 찍었구나. 집에 돌아와 사진에 찍힌 청년의 그늘진 얼굴에 괜스레 미안했다.
청년들을 지나쳐 빵집으로 가는 공원 어귀에 거지들이 8~9명 떼거지로 모여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담배인지 뭔지 모를 것들을 피우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서 있었을 뿐인 그 거지들이, 나한테 관심이 일도 없었던 그 사람들이 들으면 엄청 황당하겠지만, 난 그들 앞을 지나갈 때 온몸의 세포들을 긴장시키고 온몸의 촉각이 그들을 향해 있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겁이 났다.
'설마 이렇게 사람 많은데 우리한테 뭔 짓이나 하겠어. 우리 꼴을 봐. 돈이 있을 것 같진 않게 생겼잖아. 얼굴 바짝 들어. 얼굴 보면 안 올 거야. 우린 애들도 있다고. 말 시키지 마라. 말 시키지 마라.'
일부러 못난 얼굴처럼 찡그리고 그래도 너무 심술궂어 보이면 시비라도 걸까 봐 입가엔 미소를 띤 채 한 발 한 발 앞만 보고 고개를 버쩍 쳐들고 그 앞을 지났다.
무사히 빵집에 도착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너무 한산하다. 간판도 없다. 문도 닫혀있다. 안에 사람도 없다.
'뭐지? 폐업했나?'
그때 유리창에 붙어있는 종이 발견.
‘We will be closed on Wednesday August 29th for our staff Appreciation Party.’
미국 참 일하기 좋네. 종업원 감사 파티라니.
소진 남매의 실망이 짜증으로 폭발하기 전에 또 다른 맛 집이라 책에 쓰여있던 'Bi-rite 수제 아이스크림집'으로 서둘러 향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쥐어줘야 집까지 평화롭게 갈 수 있다는 걸 엄마의 본능으로 안다. 아이들의 손으로 옷으로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닦아주랴 유모차 밀으랴 내 아이스크림 먹으랴 언덕길을 올라가랴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수제 아이스크림의 고급진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다음에 오면 꼭 콘이 아닌 컵으로 사야지!'
언덕 꼭대기에 차를 대면서 '올라올 때 힘들겠다' 아주 잠시 짧게 생각은 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치에 나중일은 나중으로 미뤄버리고 신나서 내렸었지. 그 짧은 생각을 좀 더 길게 했어야 했다. 50도는 족히 될 경사를 유모차와 온갖 짐을 가지고 올라오기란 헬스클럽에서 30분 Pt 받는 느낌이었다.
“엄마 거지 아저씨가 나빠요?”소윤이가 곳곳에 보이는 거지 아저씨들을 보며 말한다.
"모든 거지 아저씨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많은 거지 아저씨들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해, 엄마는." 이 얘기를 했던 건 아까 보았던 무언가를 피고 술병을 들고 있던 거지들의 무리를 봤기 때문일 거다.
"왜 거지들은 돈을 안 벌어요?”
"돈을 벌기 싫어서 안 벌기도 하고 아파서 못 벌기도 하고 그럴 거야.”
"그럼 우리가 그 아저씨들한테 돈을 주면 되잖아요.”
"벌고 싶은데 못 버는 아저씨들한테는 소윤이가 주고 싶으면 줘도 돼. 하기 싫어서, 얻어먹는 게 좋아서 안 버는 아저씨들한테 주면 그 아저씨들은 계속 편하게 돈을 받아서만 쓰고 벌진 못할 거야. 그래서 주면 안 된대.” 어디선가 나도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거지들에게 항상 돈을 주면 그 돈으로 인해서 살아갈 힘을 더 얻지 못할 수 있다고.
“그 아저씨들은 왜 돈을 안 벌어요?”
“왜 안 벌 꺼 같아?”
차에 도착했다.
'거지들이 사는 세상은 어떨까?'
무소불의 무서울 게 없는 삶일까, 사면초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삶일까. 잃을 게 없는데 못할게 뭐가 있을까. 가진 게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어떨까? 잃을게 많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가진 게 많아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
가진 게 적든 많든 뭐라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풍성하게 사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두려움 없이 이 세상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경험해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지키고 싶은 게 많아 이도 저도 못하고 전전긍긍 사는 것보단 남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이 세상 부자로 풍성하게 살고 싶다. 그것이 믿음이 됐든, 자식이 됐든, 경험이 됐든, 사랑이 됐든. 난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