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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고래 Jan 17. 2024

이 도시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고

대출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방에 들어오자마자 별생각 없이 냉장고를 벌컥 연다. 그가 손까지 베어가며 산처럼 깎아 놓은 망고가 눈에 들어오자 나는 금세 아이 얼굴이 되어 울음을 터뜨린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는다. 눈물이 잔뜩 묻어 얼룩덜룩해진 얼굴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노트북을 열어 배포를 시작한다. 일요일 밤 10시. 지난가을, 낮밤을 몽땅 써서 힘들게 만든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그의 짐이 모두 빠지자 이상하리만치 크게 느껴지는 혼자 남은 방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배포 시작하였습니다.’라고 사내 메신저에 알린다. 응원하는 각종 이모지가 찍힌다. 평소 같으면 몇 년이 지나도 대규모 배포는 아직도 떨리는구나, 하며 연신 가슴을 부여잡았을 텐데 오늘만큼은 그런 감정은 쳐다볼 여유가 없다.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도 잊지 않고 사다 준 생수 한 팩을 본다. 생수에 시선이 닿자 잠깐 멈췄던 울음이 또 터져 나온다. 그는 혼자 씩씩하게 공항에 가고 이미 비행기도 이륙했는데, 내 울음은 그칠 줄 모른다. 아니, 이 바보 같은 배포 때문에 그가 혼자 공항에 가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더 서럽게 울어재끼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치앙마이에 억지로 붙잡혀 있는 사람인 줄 알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한국에서도 여러 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치앙마이가 그리워서, 떨어져 있는 것이 가슴 아리게 아파서 울었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대규모 작업으로 주말이며 공휴일이며 가릴 것 없이 새벽 세네시까지 일을 할 때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중요한 일이 다 끝나지 않아서 치앙마이에 못 돌아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곳에 홀로 남겨졌다. 도시를 볼 때마다 사랑으로 터져 나갈 것 같았던 마음이, 외로움으로 짙게 물들었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밀물처럼 차 올랐다. 그는 택시 타기 전,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이레 짓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면 보증금 같은 거 고민하지 말고 돌아오면 돼. 하지만 재미있으면 하고 싶은 것 실컷 다 하고 즐겁게 지내다 와."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에 온통 잠겨버렸지만 알고 있다, 중간에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잔뜩 부은 얼굴로 일어나 대충 씻고 모자를 눌러쓰고 햇볕을 가릴만한 긴팔을 입고 익숙하게 해피 블루로 향했다. 지난여름 치앙마이에서 우연히 가게 된 이 카페는 이제 내 아지트가 되었다. 요가 수업을 온라인으로 예약하려다가 태국 계좌도 없고 바보 같이 신용카드도 가져오지 않은 내게 친절을 베풀었던 인연을 시작으로 카페의 공동 오너인 하늘이와 리나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카페는 북적북적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리나는 주로 하늘이와 리나가 일하는 테이블에 같이 앉자고 손짓을 한다. 간밤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묘한 안정감이 나를 감싸 안는다. 일을 하다가 맞은편에 앉은 리나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가 다시 일을 했다가를 반복한다. 하늘이가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리나는 태국어로 내 이름과 리나, 하늘이의 이름을 쓰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고작 몇 개의 태국어 알파벳을 배웠을 뿐이지만 내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기쁨에 눈이 반짝인다. 도시도 잔잔한 평화와 적당한 활기, 가능성과 포근함, 내가 느꼈던 그 모든 사랑으로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응, 그렇지, 혼자가 아니야. 




 짝꿍이 가는 것이 그렇게 아쉬워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왜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을까. 왜 여기에 그렇게까지 있으려고 하는 것일까. 때때로 나조차도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다. 오기 전에도, 오고 나서도, 그가 떠나고 나서도, 문득문득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나는 치앙마이를 다시 한번 찬찬이 살핀다. 어여쁘고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구석도 들여다보고 의아하고 미운 구석, 신기하고 웃긴 구석까지 샅샅이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도시의 붉은 벽돌과 노란 조명, 파란 하늘, 친절한 얼굴들에서 나로 옮겨간다. 소위 궁합이 잘 맞는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나부터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무서워하는지, 내 속을 더 깊숙이 살펴보려고 눈을 크게 뜬다.


 작년에 이슬아 작가의 글쓰기 강연이 있었다. 강연에서 이슬아 작가는 '거리'에 대해서 긴 시간을 할애하여 열심히 이야기했다. 일기와 에세이를 나누는 차이점. 어떤 사실과 그 상황에서 오는 순간적인 감정이 스토리가 될 수 있는 조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적이든 공간적이든 일정 거리를 두고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고 통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비단 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정 시간 이상을 살아내고 나면 그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고, 내가 내린 선택들인데도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낯설어질 때가 많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랜덤한 시간의 무더기가 아니라 나만의 서사로 납득이 되려면 결국 나조차도 내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망 없이는 어느 날 일어나서 거울을 봤을 때 그저 늙어버린 내 얼굴을 한, 가장 이해 안 되고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와 멍하니 마주하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나는 나와 전보다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좀 더 또렷하게 보고 솔직하게 마주한다. 나와 나는 서로에게 전보다 한층 투명해진다. 그러고 나면 해야 하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도 함께 명확해진다. 웃긴 것은 해야 하는 것이 전처럼 지긋지긋하고 피곤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으로 다시금 보이고, 그러면 나는 새롭게 힘을 받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징검다리 건너듯 재미있게 건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꽤 괜찮은 나를 알아가는 기분이다.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한 바퀴 쭉 둘러본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제법 믿을 수 있는, 내가 좋아할 만한, 자랑스러운 구석도 많았구나 싶은 것이다. 그런 감각이 피부에 닿으면 괜히 짜릿해진다. 나의 진심과는 가까워지고, 내가 보낸 시간은 멀리서 볼 수 있는 곳. 그런 장소가 치앙마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은, 두렵지 않다. 또 얼마큼의 시간이 흘러 내가 낯설어져도 이 선택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앙마이를 그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떨어져 있으면 눈앞에 아른아른거릴 만큼. 이 도시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고. 사랑하는 만큼 돌아와야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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