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이어지는 순간들
나는 남편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갑자기 무슨 자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말에는 단순한 애정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우리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남편에게 식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이고, 식사의 만족도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반면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여보, 미안해.)
그럼에도 내가 그를 행운이라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릴 때마다 그는 나를 붙잡거나 고치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주었다. 흔들리는 나를 보며 핀잔을 주지도, 조급하게 결론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려줬다.
(물론 체념이 섞인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질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 한마디는
‘너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지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원래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중요해질수록
상대가 떠날까 봐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타인을 통해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그 관계 안에서
나 스스로를 다듬어가며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내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3대가 노력하면 변하는 거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편에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다. 따스한 부모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아버지는 의지 하나로 그토록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단칼에 끊으셨다. 나는 그 결단력을 존경한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분의 책임감과 선택은 우리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는 기반이 되었다.
큰 딸이 세 살 무렵, 치아 문제로 빨대 물병을 떼는 과정에서 나는 아이의 고집을 꺾으려 훈육을 한 적이 있다. 몇 시간 동안 울며 대치되는 그 과정에서 그 작은 아이의 엉덩이를 몇 차례 때렸다.
그날 밤, 잠든 아이 곁에서 후회하며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나를 멈춰 세운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노에 휩싸였던 내 몸의 감각이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버지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멈추는 쪽을 선택했다.
아이를 때리는 훈육은 하지 않겠다고.
분노가 몸을 앞서 나가기 전에
반드시 한 번 더 돌아보겠다고.
그리고 그 선택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분노가 올라올 때면
말이 먼저 튀어나오기 전의
그 짧은 틈을
나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조금씩 바꾸는 이 선택들 위에서
내 아이들은
조금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 채
자라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버지가 하지 못한 것을
내가 조금씩 시도하고,
내가 아직 바꾸지 못한 것은
언젠가 아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이어갈 것이다.
살아가며 알게 되었다.
개인의 변화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세대의 선택 위에
다음 세대의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흐름은 바뀐다.
오늘도 나는
삶과 삶이 이어지는 순간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이 작은 노력들이 쌓여
세대를 건너는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3대가 노력하면, 정말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