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사라지지 않는 기억에 대해
가끔 집이 너무 조용하면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실제로 그런 소리를 자주 들은 건 아니다.
대부분은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소리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정확히 건드린다.
어느 날은 대낮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
아파서 우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에 크게 놀랐을 때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비명 같았다.
아이가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 떨어졌을 것 같다는 상상이 스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공포와 함께 밀려오는 무력감 속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들은 그 소리에 대해 말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아주 오래전,
한 아이가 삶을 떠났다.
그 아이는 떠나기 약 1년 전쯤
상담실에서 만났던 아이였다.
나는 담임교사도 아니었고,
아주 오랜 시간 함께한 관계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상담자라는 이름 아래
나는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그때,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그 반의 아이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고,
나는 그들의 감정을 함께하며
애도의 시간을 도왔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보고서와 행정 업무 속에서
내 마음은 뒤로 미뤄졌다.
자책과 원망을 잠시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래야만 무거운 마음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쁘지 않은 순간마다
수많은 ‘만약에’들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 일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3년이 걸렸고,
마음이 가라앉는 데에는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해가 좋은 날이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그 감정의 온도를 조금씩 낮춰주었을 뿐이다.
그 아이가 떠오를 때면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기억하고, 애도하고,
다시 사랑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상담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아파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사람.
그리고 동시에
상처받고, 흔들리고,
기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상담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