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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 Jan 15. 2020

라스베이거스에서 산다는 거 1

누구나 그러한 듯, 나는 라스베이거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니 편견이라고 할까.

이 도박의 도시는 늘 화려하고 불이 꺼지지 않으며, 우주 밖에서도 그 불빛이 보인다는.

누군가가 지금의 나의 생각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 사는 거, 그거 다 똑같아요."

너무 뻔한 말이지만, 정말 어디에서 살든 모두 비숫한 고민과 걱정 속에서 비숫한 일들로 행복해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제는 적당히 나이를 먹어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가끔 아주 색다른 경험을 주기도 하고 색다른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국을 넘 오래전에 떠난 나로서는 이제는 한국과 이 곳을 비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국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해하리라.

나는 이 곳에 친구 몇 명이 있다.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과  이 곳에 살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나 같은 사람들(Elsavador, phillipine, Thailand, etc)

그 모임에 가면 항상 '이 아이러니는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이상한 괴리감이다. 물론 그들은 친절하며 즐겁고 때론 위로가 된다. 사실 한국인 친구에게 얘기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는 할 수 있으며 하기도 했으며 그래서 위로를 받았다. 나만 이런 건 아니라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른 모습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경험을 했으며 같은 감정을 가진다는 건, 정말이지 위로가 된다. 미국에서의 이방인으로의 나의 삶에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은 고맙기까지 하다. 우리는 60대에서 20대까지 있으며 다양한 국적을 가졌었으며(지금은 다들 미국인),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날엔 꼭 만나 서로 축하하며 힘든 일은 같이 슬퍼한다. 그것은 내가 62살인 Carol를 Carol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며, Charge nurse 인 Terri를 Terri라고 부를  수 있기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 

평등. 

우리는 모두 다른 직업을 가졌다. 물론 병원이라는 같은 공간이지만, 하는 일들은 다 제각각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에서의 병원은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선배가 있었으며, Charge Nurse, Head Nurse가 있었고, 그 위에 Doctor들이 있었다. 지금도 뉴스를 보면 많이 달라진 것 같진 않지만. 나는 이 모 임에서 한 번도 Doctor. Evans를 doctor라고 부리지 않았으며 Admimnistrator도 Joellen 일뿐이다. 이것은 나에세 신기한 경험인 동시에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필요한 존재이며 당연히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인식을 나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나 

그것으로 이미 인정받았다. 이것은 내가 이 곳 라스베이거스에 산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와 기쁨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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