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앞두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생각들
이제는 아기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을 정도로 우리 아기가 많이 컸다. 남들 눈에는 아직 작디작은 아기지만 내 눈에는 매일매일이 다른 똘똘이다. 누워만 있는 줄 알았던 아기가 이제는 스스로 땅에서 일어나고 엄마, 아빠도 말하다니. 식상한 말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아기가 크는 동안 나의 감정도 참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참 많이도 했다. 일을 안 할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떨 때는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겸손하지 못하고 자랑을 하자면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아기를 배에 품고 전문의 시험도 봤고, 그때 필기는 일등을 했고, 아기 낳은 후엔 박사 논문도 쓰고 학위도 받았다(물론 아기 보느라 시어머니가 제일 많이 도와주셨다. 그리고 친정어머니도).
그런데 가족들은 일단 아기 키우기에 집중하라고 한다. 내가 무슨 당직 서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딱 여섯 시간 일한다. 한 달에 7번 정도 일한다. 사실 단점이 있긴 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한다. 그래서 우리 셋이 온전히 보내는 시간이 적다. 하지만 모든 주말마다 일하는 것은 아니고 주말 10개 중 7개 정도 일한다. 그리고 남편은 목요일과 일요일에 쉰다. 그래서 목요일에 우리 셋이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평일 일자리로 옮기고 싶어서 알아도 보았다. 평일 오후 세시부터 저녁 7시까지 네 시간만 일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시어머니가 못 봐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를 탓하지는 않는다. 시어머니가 손주를 봐줄 의무는 없다. 단지 내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갈 만큼 이 직장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곳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일을 나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이마저도 답답한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슬슬 그만두라는 눈치다.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데 왜 일을 하냐는 것이다. 나는 여섯 시간 일하고 일당으로 삼십만 원 넘게 받아오면 꽤 괜찮지 않냐고 항변하지만 사실 일을 하러 나가는 이유는 숨을 쉬러 나가는 것이다.
일을 하면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전업주부 일을 전혀 잘하지 못한다. 남편 아침밥도 못 차려 주고 저녁은 차리는 날 반, 남편이 사 먹고 오는 날 반이다.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집안일은 영 서툴다.
출근을 하면 월화수목금토일 요일 개념이 생겨서 좋다. 육아만 하면 요일 개념이 없다. 그저 남편 퇴근만 기다릴 뿐이다. 아기랑 놀아주다가도 나 혼자 풀이 죽어 우울해지는 날들이 많았다.
내가 모성애가 없는 건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니어도 좀 부족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여기 쓰기 부끄러울 만큼 자괴감이 든 적도 있고, 나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인 후회 가득한 순간들도 있다.
남편은 가정적이다. 나는 남편처럼 하지 못한다. 내가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회적 의무감에, 가정적인 척하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돌이 되면, 일 년이 지나면 성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도 압박감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해내야 된다는 압박감.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는 압박에 이도 저도 아닌 채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남편은 격려해 주지만 나는 여전히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는 걸까.
어렸을 때는 내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도 될 줄 알았다. 내가 노벨상이라도 받을 줄 알았다. 언제쯤 겸손을 배울까. 아니, 무엇보다도,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생각이 너무 많다. 사실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인데. 내가 나를 너무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