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비행에서 만난 커피메이트
2018. 12. 23
나이지리아, 아부자
브리핑 노트를 적으며 생각했다. 올 크리스마스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 호텔 안에서 보내겠구나-.
그러고 보니 벌써 가족, 친구들 없이 보내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비행은 크루들 사이에서도 바쁜 비행으로 통했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파는 보부상들이 유독 많은 비행이다 보니 승객의 대부분이 제 몸만 한 짐들을 양손 가득 들고 탑승한다. 그러면 승무원들은 단 두 문장만으로 거대한 짐과 승객들로 뒤엉켜있는 정신없는 기내를 정리한다.
“May I check your boarding pass?”
“Excuse me, May I get pass?”
좌석번호를 확인해서 얼른 본인 자리를 찾아드리고, 비좁은 복도를 쏘다니며 비어있는 햇트랙들을 찾아내 제시간에 맞춰 테트리스를 끝내야 하므로-.
첫 번째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기내 조명이 어둑해진 후 승객들이 깰 새라 조심조심 갤리 커튼을 쳐서 빛이 기내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았다. 허기진 채로 연신 윙윙거리며 크루 밀을 데우고 있는 오븐을 바라보며 기내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쯤, 커튼 틈으로 빼꼼 얼굴 하나가 들어왔다.
“Sorry for bothering. Can I have a cup of coffee?”
“Absolutely! come in”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갤리 안으로 들어온 중년의 나이지리안 아저씨. 갤리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에 큰 눈으로 갤리 안을 쓱- 훑어보더니 식사 중이었냐며 나중에 다시 오시겠단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7명의 크루가 어서 들어오라고 합창했다.
14개의 눈이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이는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질문도 함께 쏟아졌다. 크리스마스에 뭐 할 거야? 아부자 날씨는 어때?로 시작된 질문은 무슨 사업을 하고 있니? 어디에서 오는 길이니?까지 이어졌다. 중국에서 옷을 가져다가 팔고 있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갤리에 등을 기대어 서서 편안히 대화를 이어갔고, 크루들은 하나 둘 크루 밀을 펼쳐놓고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때때로 과자나 사탕 따위를 먹으며 그에게 “have this!“라고 친구에게 권하듯 내밀었고, 그는 “Thank you”라고 답하며 서로의 간식을 나눴다.
국내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경악할 일이었다. 승객이 서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고, 우리는 갤리에 있는 컨테이너를 하나씩 끄집어내어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밥을 먹으면서 승객과 하하 호호 웃는 것.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려고 몸을 일으킨 나는 내 몫의 커피를 준비하며 힐끗 그가 들고 있는 빈 종이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커피 주전자를 들며 그에게 물었다.
“Do you want some more?”
“Why not?”
그가 내미는 컵에 커피를 부어주며 별 의미 없이 물었다.
“Isn’t it too strong?”
“This is perfect for me! then what coffee are you gonna drink?”
솔직히 말하면, 그가 내게 되물어올지 몰랐다. 그저 직업병처럼 손님과 눈이 마주치면 자동으로 입이 열리는 나는 그에게 뭐라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지, 저 질문이 뇌를 거치지 않고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마치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에서 정적을 버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 Black. same as yours.”
그런데 그의 질문에 순간 벙찌며 나도 똑같은 걸 마신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그는 다시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쥐고 내 앞으로 내밀었고, 나는 그의 주먹에 내 주먹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내 바보 같은 질문을 시작으로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그의 블랙커피 예찬론을 들으며 나 또한 내 친구들은 내 몸속에는 아마 피 대신 커피가 흐를 거라고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비행기가 아부자 공항에 도착하고, 내가 서 있는 뒷 문이 열렸다. 7시간 비행의 끝에서 오는 고단함을 감추고 하나둘씩 짐을 들고 하기하는 승객들에게 정신없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짐을 들고 복도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Thank you so much, Bye.” 끝없는 인사를 하다 보니 드디어 그가 내 앞에 섰다. 활짝 웃으며 짐을 내려놓은 그는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Hope to see you soon, my coffeemate!”
Coffeemate...
기대하지 않았던 단어였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음에도 그는 나를 그렇게 지칭했고 그렇게 우리는 커피메이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피곤함에 기내화 속 퉁퉁 부었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비행을 마무리하고 있는 내게 그가 저 짧은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만 같았다. 갑자기 발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을 꽉 채우는 무언가에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Hopefully, I will be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