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 Sep 23. 2020

결국은 술이 문제였다

알코올 중독과 당뇨의 문턱에서...

결국은 술이 문제였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약 7개월 전... 

어떻게든 애주가 정도로 합의 보고 미화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그동안 명백한 알코올 중독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지난 2월 남편 앞에서 주중 금주를 선언했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고, 락다운 생활로 점차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또 슬금슬금 술을 찾았다. 어떤 날은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해 무료해서, 또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또 어떤 날은 신경 써서 요리한 음식을 앞에 두고 술을 야곰야곰 마셔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폭풍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단순한 식곤증이라고 하기엔 졸음의 강도가 너무 심했다. 누군가 내 몸을 땅 밑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무기력해졌고, 순식간에 눈이 감기면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는 순간 뭔가 불길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거 설마 혈당 스파이크인 건가?      


책장을 뒤져 작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를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근 10년간 80~90 사이로 아무 문제 없었던 공복혈당이 작년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106인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당화혈색소는 정상치였고, 공복혈당 수치 자체도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기에 일시적인 결과였겠거니 하고 무심결에 넘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충격이었다. 비만한 체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탄수화물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근육량도 평균 이상이고, 당뇨 가족력도 없는 내가 당뇨라니. 물론 엄밀히 말하면 당뇨 전 단계이긴 하지만 이 상태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결국은 당뇨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혈당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동안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늘 피곤했던 것이 설명되는 듯했다. 작년 캐나다행을 계기로 일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때보다 더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미국에 온 이후에도 마찬가지...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운데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없고 개운치 않고 쉽게 지쳤다.      


우선 제일 먼저 간이 혈당계를 주문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 건지 눈으로 확인해야 했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공복 혈당이 지난해 건강검진 때와 마찬가지로 평균 106~109 사이로 높아져 있었다. 식후 2시간 혈당 역시 165~185 사이로 당뇨 전 단계 수치였다. 일시적인 상승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임신성 당뇨였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성 당뇨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재검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참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도 당뇨는 나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질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검도 건성으로 받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경구포도당을 마시는 거 자체가 너무나 역하고 속이 니글거려 모두 다 마시지도 못하고 검사 전 몰래 버리기까지 했다. 부끄러운 꼼수(?)로 재검을 통과하긴 했지만, 제대로 검사를 했다면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신성 당뇨가 있었던 환자의 경우 약 50%가 20년 이내에 현성 당뇨로 진행된다고 하니, 나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그간 식습관에는 문제가 없었나? 여기서는 사실 조금 의아했다. 왜냐하면 식성 자체가 채소와 육류는 좋아하지만 탄수화물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깃집 가면 오롯이 고기로만 배를 채우지 내 위장의 한치도 밥에 양보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육식파는 아니고 해산물도 좋아하고, 채소나 과일도 즐겨 먹는다. 밥은 평소 반 공기를 넘지 않게 먹고, 면류나 인스턴트, 군것질도 즐기지 않아서 스스로는 매우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나와 당뇨는 먼일이라고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가 간과한 부분은 있었다. 내 몸이 혈당 조절을 썩 잘 해내고 있지 않다는 징후가 그동안 분명히 있었다. 가령 식사시간을 조금만 놓쳐도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지고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고 심할 때는 아찔하면서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 흔히 말하는 “당 떨어질 때” 느끼는 증상인데 나는 남들보다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저혈당은 신속하게 당분을 보충해주면 곧 진정되니 그간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저혈당 증세가 나타난다는 건 혈당 조절이 무언가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다 가끔 그러는 것이 아니라, 빈도나 정도가 평균 이상이라면 한 번쯤 의심을 해보았어야 했다.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에서 살면서 너무 안일했던 나머지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것도 반성의 대상이었다. 5살 천방지축 비글 둥이를 난생처음으로 오롯이 홀로 케어하다 보니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었다.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기면 어디라도 누울 곳을 찾아 숨어들기 바빴다. 오히려 일할 때는 의식적으로라도 더 움직이고, 주말이면 PT도 받고 했었는데, 아이 둘과 함께 하루 종일 있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훨씬 더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지 늘 초저녁부터 녹초가 되곤 했다. 그때도 이미 혈당이 높아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사실 진짜 주범은 따로 있다. 이미 스스로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에둘러서 말하자니 낯이 뜨겁구나. 위의 이유도 물론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건 분명 술에 지친 나의 간의 문제였다.      


시작은 쌍둥이를 키우면서 너무 힘들다는 핑계로 매일 밤 맥주를 마시면서였다. 애들 모두 재우고 모두가 잠든 밤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이 내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술을 한껏 들이마시고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고 나면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습관이 계속 이어져 급기야는 매번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기 시작했고, 음료수 마시듯이 맥주, 와인을 계속 찾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의식이 없었을까? 아니다. 더 최악인 것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소량이라도 매일 마시는 술이 폭음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것, 여성이 남성보다 간의 크기가 작아서 같은 양의 알코올이라도 여성이 더 취약하다는 것. 이렇게 계속 분별없이 생활하다가는 언젠가 큰 코 다칠 거라는 걸 이미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심지어는 건강검진에서 음주 패턴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할 때 일부러 빈도와 양을 줄여서 쓰곤 했으니, 이 낯뜨거움을 어찌해야 할까. 


 당뇨는 크게 선천적으로 인슐린 생성이 되지 않는 제1형 당뇨와, 후천적으로 인슐린 생성 부전이나 인슐린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제2형 당뇨로 나뉜다. 보통 선천성인 제1형 당뇨 말고 성인이 되어 발병하는 제2형 당뇨는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특히 제2형 당뇨는 생활습관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치료법도 약물요법보다는 식습관 및 생활습관 교정이 우선이다. 보통은 당뇨 하면 췌장과 인슐린만 떠올리기 쉬운데, 간도 혈당 조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여 혈당이 올라가면 췌장의 베타 셀에서 인슐린을 분비하여 포도당이 근육과 조직 내로 들어가게 한다. 반대로 공복 시 혈당이 떨어지면 알파셀에서 글루카곤이 분비되고, 이에 간에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혈액 속으로 방출하도록 한다. 이렇게 두 호르몬의 피드백 기전이 잘 작동하여야 우리 몸의 혈당이 잘 조절된다. 식후 혈당보다 아침 공복혈당이 문제라면 간 기능 저하일 가능성이 더 크다. 수면 후 아침 식사 전까지 공복 혈당을 조절하는 것은 주로 간이기 때문이다. 간 기능 저하로 간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면 포도당 생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아침 공복 혈당이 높아진다. 나의 혈당 패턴 또한 식단 관리 후 식후 혈당은 잘 조절이 되었는데 공복혈당 수치가 잘 잡히지 않았다.      


결국은 술이 문제였다. 그동안 나의 간이 술에 너무 지친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저절로 반성하고 술을 끊어야 정상 아닌가. 한데 106이라는 숫자는 고집불통인 내겐 충격이 덜했던지, 그 이후로도 단번에 술을 끊지 못하고 하루 이틀 금주하면 그다음 날 또 술을 입에 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몇 주 뒤 혈당을 재어보니 이번엔 114~116 사이로 공복혈당이 더 높아져 있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진짜 충격이 왔다. 나름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더 나빠졌다니. 핵심 원인인 술을 끊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다가 당뇨 환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정말 내가 그동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걸까. 이러고도 내가 환자들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나 될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등골이 섬뜩해졌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독하게 마음먹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때부턴 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후 아침 공복 혈당 93이라는 숫자를 보았고, 그 이후로는 계속 절주 중이다. 지금은 주중에는 금주, 주말에는 가볍게 맥주 한 캔 혹은 와인 한잔 정도를 지키고 있다. 물론 공복혈당도 100 이하, 식후 혈당도 145 이하로 떨어졌다. 식단도 탄수화물을 줄이고, 가끔 커피에 곁들이던 조각 케이크나 초콜릿도 자제하는 중이다. 적어도 이틀에 하루 정도는 40분 이상 걷는다. 그야말로 아찔했던 경험으로 이렇게 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구나. 건강은 어떠한 경우라도 자만하지 말자.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나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똑바로 보고 철저하게 반성하자. 이제 고작 4학년에 접어든 한의사가 알코올 중독과 당뇨 문턱에서 혼쭐이 난 찐 에피소드는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 미국 살이 : 아이의 복통, 당황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