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북리뷰] 장강명『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by 봄날
찔러봐,라고 그 아이가 말했어.
남자가 말했다.
찔러봐, 찔러보라니까?
여름날 더러운 개울가의 날벌레들처럼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미친 새끼. 칼을 든 아이를 누군가 뒤에서 발로 찼다.
병신 새끼. 존나 찐따 같은 게 칼 들고 지랄하고 있네. (p7)


첫 문장부터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들의 입에서 일상적으로 쏟아져 나옴 직한 단어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 속상하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이토록 더 험하게, 더 세게 보이려고 애쓰게 되었을까?


학교에서 어른들에 의해 이루어진 폭력 -소지품 검사, 체벌 등- 앞에 속수무책인 아이들에게 비난의 대상은 어른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렇게 학생 소지품을 마음대로 뒤지는 건 인권침해라고요(p59)'라고 할 말을 한 남자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온 것은 아닐까?


야, 너 존나 또라이라며? 선생한테 존나 개겨서 너 때문에 애들 다 처 맞은 적도 있다며? 와, 씨발 학기 초부터 말 씹냐? (...) 하여튼, 씨발. 나대지 마라, 올해는. 잘못하다 뒤지는 수가 있다.(p80)


갖은 수모와 공갈협박을 견디다 못한 남자는 살인에 이르게 되고, 그나마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9년을 복역하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을 죽인 소년은 여전히 남자 안에 있다.

복역 후,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고 첫사랑 여자도 만나게 되지만, 남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 아주머니가 있다. 남자에 의해 살해된 영훈이의 엄마이다.


아주머니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남자에게 내민다. 정당방위라고는 할 수 없지 않냐며, 기자에게 억지로 전화를 시키고는 '우리가 영훈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이런 일뿐이잖니.(p80)'라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이 일진도 아니었다며, 남자의 살인은 결코 정당방위가 아니라며 억지를 부리는 아주머니는, 사실 아들이 카레를 정말 싫어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예의상 인사치레로 해주는 말들을 진실로 여기고, 정말 들어야 할 말들은 못 들은 척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영훈이 엄마는 아마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훈이를 일진으로 만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비롯한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더 강하게 부인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 책은 더 많은 이야기와 생각거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준비가 되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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