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사진부터 -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글로벌 임원진, 바이레도 창업자 벤 고헴(Ben Gorham), 아쿠아 디 파르마 CEO 로라 버디스(Laura Burdese), 니콜라이 퍼퓨머리의 니콜라이 드 파트리샤(Patricia de Nicolaï), 아틀리에 코롱 창업자 실비 간터(Sylvie Ganter)와 크리스토퍼 세르바셀(Christopher Cervasel), 딥티크 CEO 파비앙 마우니(Fabienne Mauny),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프란시스 커정(Francis Kurkdjian), 불가리 조향사 소피 라베(Sophie Labbe) 이외에도 향수산업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신 분들을 운좋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3년 겨울 운 좋게 파리에서 세계적인 마스터 조향사들을 직접 만나고 제 향수를 조향하게 되고, 약 400여 개의 향수 리뷰를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올리고, 1천 여명이 넘는 분들을 온오프라인 향수 강의 때 뵈었을 때 이런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림도, 입으로 먹는 음식도, 귀로 듣는 음악도, 손에 잡히는 옷도 어려울진데 눈에 보이지도, 먹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향수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 책 <아이 러브 퍼퓸>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이 계실 수 있어 여기에 한번 더 적어봅니다. 200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우리가 냄새를, 향을 맡는 방식1)을 보여준 리처드 악셀(Richard Axel)과 린다 B. 벅(Linda B. Buck)이었습니다. 커피, 밥, 빵 등 매일 다양한 향을 맡는, 너무도 당연하게 향을 맡고 있는 이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라는 건 그만큼 우리가 후각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향은 코 속의 후각세포를 통해서 전기자극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전기자극은 감정을 담당하는 곳을 지나, 기억을 관장하는 곳 근처에 도착합니다. 그래서 향은 우리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영향을 끼칩니다. 좋은 향은 좋은 감정을 더욱 오래 잘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왜 어떤 향을 만났을 때 지나간 옛 기억, 그 장소, 그때 그 사람, 그 장면이 떠오르는 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과학적인 연구로 알기도 전인 옛 사람들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코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미이라를 만들 때 코를 통해 뇌를 끄집어 냈으니까요. 거의 백년 전에 쓰여진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에서도 등장합니다.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그래서 흔히들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르는 향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요.
"눈을 감고 김치를 떠올려주세요. 그리고 김치의 향을 생각해주세요."
저마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김치 향이 발랄하게 등장할 겁니다.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 부추, 파가 많이 들어가 그 향이 강한 김치 등 집집마다 또는 주문해 먹는 곳마다 다른 김치 향이 펼쳐질 겁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김치를 한 번도 직접 보고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김치 사진을 아무리 열심히 보여주어도 그들은 김치의 향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치를 직접 경험한적 이 없으니까요. 우리 인간은 1000만 개의 후각 뉴런과 400여 개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이용해2)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냄새와 향에 대한 개인만의 기억과 감정은 후천적으로 습득하여 생성 저장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향이란 존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를 떠나서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향수의 발전은 곧 인류의 발전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의학, 과학이 발전하면서 향수 역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나 신에 대한 경배의 종교 예식에서부터 방충, 보존제, 의학용,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향신료로도, 또는 부를 축적, 과시하는 수단으로, 악취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향수는 사회가 발전해나가면서 자아를 가진 인간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기도 합니다. 코를 통해 자신의 뇌에서 받아들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해석이다보니 수치화, 정량화하기 어렵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언어를 활용할 때 각자가 가진 기억을 형성하는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보니 쉽게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AI(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시대에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른 점, 내가 '나'인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 가진 기억과 감정 때문입니다. 나의 기억과 감정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향수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알아가고, 나를 표현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 향기로운 존재입니다.
덧붙이는 말
향수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용어입니다. 향수산업이 현재처럼 발달하게 된 것은 서유럽의 영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용어가 한국어가 아닙니다. 향수업계에서 향의 노트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향료는 요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재료, 향신료와 같은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향수 업계에서는 주로 영어 그대로 사용하고, 요리 업계 또는 한의학 업계에서는 한문 명칭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향수업계에서는 ‘너트메그(nutmeg)’, ‘클로브(clove)’, ‘시나몬(cinnamon)’이라 말하는 것을 요리에서는 ‘육두구’, ‘정향’, ‘육계나무’라고 씁니다. 또한 향수업계에서는 ‘자몽’이나 ‘장미’ 대신 ‘그레이프프루트(grapefruit)’, ‘로즈(rose)’로 영어 발음 그대로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향수에 관한 책이고 저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향수를 만나러 또는 구매하러 갔을 때 향수업계의 단어들이 친밀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의 향수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영어 단어를 발음나는 대로 한글로 적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도 들었지만, 향수에는 워낙 오래된 이야기들이 많아 진위를 알기 참으로 어렵고,무엇보다 제가 기억하고 싶어서 첨부문헌으로 말할 수 있을 것들에도 각주를 첨부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찾는 자료로 늘 변화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일부 링크들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접속했을 당시에 쓰여진 말들에 최대한 집중하며 정리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자료들이나 수정될 사항들이 발견되신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알려주신다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1) Nobel Prize,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04’,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04/7438-the-nobel-prize-in-physiology-or-medicine-2004-2004-5//. Accessed 20 Januar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