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뀌었다.
한국을 자주 떠나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유는 남편의 비즈니스가 미국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뉴욕과 LA에 오래 머물렀고 시카고, 시애틀,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내 주요 도시를 방문했다. 일본, 태국, 베트남, 멕시코, 유럽을 다녀왔다. 시간으로 보자면 길고도 깊었는데 적고 보니 참 간단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열심히 일한 후 특별한 시간을 내어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할 때 신나는 것이지 여행 자체가 일이 되어버리면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 된다. 특히 여행자 자신의 목적과 의지가 아닌 누군가를 따라가거나 일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계획할 수 없을 때 몸과 마음이 지치는 속도가 현저히 빨라진다.
여행 갈 때 장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더라도 본인이 운전할 때와 조수석에 있을 때를 비교해 보면 쉽다. 조수석에 앉아 있으면 마냥 편할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목적지를 알고 있고 자신의 운전 습관대로 운행을 하기 때문에 그 긴장도의 리듬이 자신의 생체 시계대로 운영된다. 그러나 조수석에 앉은 이는 처음엔 몸이 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겨워지면서 빨리 피곤해진다. 내가 내 몸을 운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은 뉴욕과 LA에 법인이 있고 직원들이 있다. 미국에 거래처가 많은 여행사 사장님이다.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한겨울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거래처 및 미주 법인의 관리와 새로운 비즈니스 계획을 구상한다. 내가 그의 장기 출장에 합류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히 해제되지 않은 2021년부터다. 4년째 남편을 좇아 다니고 있다. 10번 이상 해외를 가고 많은 도시를 다녔더니 산더미 같이 저장된 사진들과 꽤 많은 도시 경험들이 쌓였다.
처음엔 박물관, 미술관만 좇아 다녔다. 어떻게든 하루 일과 중 시간을 내어 한 군데라도 더 방문하려고 기를 썼다. 1, 2년 되니 웬만큼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고 그다지 신규 시설들이 궁금하지 않은 시기가 왔다. 3년째 되니 각기 다른 문화와 기후환경 속에서 도시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 4년째 되니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런 시설이 생기는지 결과를 보고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나는 LA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고 저 하늘 아래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말하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글쟁이였다.
이 글들은 내가 남편을 따라다니며 때론 혼자, 아니면 둘이서 만난 사람들, 장소,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다.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살면서 매 시기 치열하지 않은 시간들이 없었다. 언제나 서울은 내 차 하나 주차하기에 참 좁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나보다 빠르고, 도산대로엔 나보다 근사한 차들이 즐비하다. 비교와 경쟁, 그리고 최선과 차선 앞에서 여성으로서는 수시로 도망치고 싶었고 직업인으로서는 항시 바빴고 도시인으로서는 몹시 피곤했다.
나는 모든 역할을 뒤로하고 남편의 공식 수발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많은 생각들과 나만의 계획, 성실과 체계의 안간힘을 버렸더니 역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365일 비가 오지 않는 LA에서도 비는 내렸고 분리수거하지 않아도 되는 트레쉬 박스가 반갑기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진 하루가 모여
내 인생은 그 전과 다르게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