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추천하는 보양식은 따로 있다
복날은 한국에선 중요한 날 중 하나다.
요즘처럼 먹방과 쿡방이 대세가 되기 전에도 복날만은 뉴스에도 삼계탕이 등장할 정도였다. 어지간한 삼계탕이나 백숙하는 식당은 예약이 폭주하다 못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어느 채널을 돌려도 온갖 보양식을 보여주기 바쁘다. 치킨은 진리라는 우리나라도 이 날 만큼은 튀긴 닭 대신에 삶은 닭을 찾느라 분주하고 마트에는 삼계탕용 재료들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진열된다. 최소한 1년 중 이 때만큼은 보양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보양식이라고 하면 솔깃해한다.
그런데 진짜 복날에 먹을만한 음식은 뭘까?
진짜 내 몸을 살려줄 복날 보양식을 한방내과 전문의와 함께 알아 보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렇다 치고,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 몸 입장에선 힘들 수밖에 없다. 추위에 적응되어 있던 몸이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선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더위에 적응해서 이제 겨우 살만해졌다 싶으면 이젠 추위로 눈까지 내린다. 정말 몸이 힘들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변화다. 보통 일교차가 심해지면 감기를 조심하라고 하는데 연간 온도 차이도 무시 못할 환경 스트레스다.
우리 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여기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다. 단, 이런 적응 과정에서 우리 몸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실 보양식은 딱히 여름에만 찾을 것이 아니라 겨울에도 필요하고, 일교차가 심한 봄, 가을에도 필요하다.
딱히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자체가 자연스럽게 보약이나 보양식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복날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기록으로는 기원전 676년 삼복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일주일은 7일이지만, 조선시대에도 공무원들은 7일에 한 번씩 공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복날이 7일 단위가 아니라 굳이 10일 단위가 된 것은 춘추전국 시대 10일 주기의 달력을 쓰고 있을 때 만들어진 풍습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더위에 대한 적응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이 힘들지 않을 리 없다.
더위에 노출되면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피부 쪽의 혈관이 확장되고, 더 많은 피가 피부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피부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땀이 증발되면서 피부 표면 온도가 약간 내려가게 되고, 다시 새로운 피가 피부로 와서 열을 내뿜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체온이 낮아지게 된다. 우리 몸은 항상 열을 생산하고 있다. 만약 더위가 더 심해지면, 열 생산을 감소시키기 위한 비상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몸에서 조금이라도 열이 덜 생기게 하려고 소화기관의 활동이 억제된다. 그래서 입맛이 없다고 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더위 때문에 심장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땀 분비가 증가해 수분이 계속 부족해지고, 소화기관의 활동은 억제된다. 더 쉽게 피로해지고 입맛도 없고 물만 계속 찾게 된다. 바로 더위의 초기 증상이다. 치료는 일사병이나 열사병이 되고 나서가 아니라 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료라고 해서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운 곳을 피해 시원한 데서 쉬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그늘 지고 시원한 계곡으로 가서 쉬는 피서가 복날에 하던 일이다. 마침 있던 과일이나 고기를 챙겨 가면 더 좋았던 거고.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피서를 탁족이라고 했고, 일본에서는 강가나 강물 위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서 국수나 장어를 먹었다.
보양식이 필요한 이유는 일부러 시원한 곳을 찾아야 할 정도로 더웠기 때문이다. 입맛이 없다 보니 제대로 음식을 먹을 리 없다. 영양이 부족해지면 몸이 쇠약해지고 여름을 나기는 더 힘들게 된다. 그래서 입맛을 되살리고, 부족할 수 있는 영양을 보충할 대책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보양식이다.
에어컨 켜면 춥다고 하는 게 냉방병은 아니다. 원래 추우라고 만든 물건이 에어컨이다.
냉방병은 단지 추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웠다 추웠다가 반복되면서 인체가 적응하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더위에 대한 인체의 반응과 추위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딱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우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피부의 혈관이 확장되고 땀이 난다. 추우면 피부 표면의 혈관이 수축되고 근육이 움직이면서 더 많은 열을 생산하려고 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활동을 급격하게 전환해야 한다. 특히 더운 곳에서 열 방출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너무 추운 곳에 가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추위에 적응해 열을 쥐어 짜내고 있다가 갑자기 너무 더운 곳으로 가면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이걸 왔다 갔다 하면 심장이나 혈관이 반응하는 속도가 못 따라가게 되고, 자율신경계에도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다 보면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추운데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거나 심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한다.
사실 현대에 등장한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이라는 이름이 부각이 되었을 뿐,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더위를 양서와 음서로 구분해 왔다. 앞에서 말한 더위를 타는 것을 양서(陽暑)라고 불렀고, 날씨는 더운데 시원한 곳에 있다 생기는 적응 능력 상실, 즉 냉방병을 음서(陰暑)라고 불렀다.
복날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개고기를 먹는 것이 정말 좋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개고기를 먹었던 것은 개가 오행(五行)에 따르면 금(金)이 되기 때문이다. 복날은 여름의 더위(火)가 너무 강해 원래 가을의 기운(金)이 내려온다는 경(庚)일에 가을(金)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뜻인데, 약해진 가을의 기운(金)을 금(金)에 속하는 동물인 개를 먹어 보충하겠다는 일종의 미신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근거인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은 진나라의 지배와 한나라의 정권 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철학에서 발전했던 것이고, 개고기의 영양 성분이나 약효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그러니 평소에 개고기를 좋아해서 즐겼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억지로 개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도, 복날이라고 애꿎은 개를 잡을 필요도 없다. 불교의 영향이 강했던 일본에서는 여름 보양식으로 육류 대신 장어를 주로 먹었고 지금도 장어를 먹고 있다. 복날에 우리가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느라 분주하듯 일본에서 복날은 장어덮밥집이 난리가 나는 날이다.
사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란 건 그냥 왠지 모르게 몸이 좀 안 좋다라는 말 만큼이나 모호함의 극치다.
한국에선 역사적인 이유로 개장을 먹어왔고, 쇠고기로 개장국 흉내를 낸 육개장, 인삼과 닭을 끓여 만든 계삼탕(삼계탕), 잉어찜, 연포탕, 자라탕, 뱀탕 등 다양한 보양식을 먹어 왔다. 이런 보양식의 기본은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사실 농경사회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기 쉬운 육류로부터 얻는 단백질을 챙겨 먹자고 정한 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단백질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 맨날 운동한다고 닭가슴살만 먹던 사람이 복날에 삼계탕 먹는다고 그걸 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맥 열풍으로 매일 같이 엄청난 양의 닭을 튀겨대는 나라에서 그 날 하루 닭을 튀기지 않고 삶아 먹는다고 대체 뭐가 건강해지겠냔 말이다.
어차피 지금은 애써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단백질이 모자랄 일이 드물다. 오히려 복날에 보양식 먹고 살이 찌거나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호소할 정도면 이미 건강을 위해 먹는 보양식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보양식은 지나치게 높은 칼로리와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보양식은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서 체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보양식은 한 그릇으로 뚝딱하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삼시 세 끼 골고루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다.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현대사회에선 정말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대신 복날에 자신이 평소 먹던 음식 중에서 특히 부족한 식품군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모자란 식품군을 찾아서 먹는 날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식품은 크게 나누면 곡류 / 육류, 해산물 / 채소 / 과일 / 견과류, 지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평소에 다이어트로 육류와 지방 섭취가 부족했다면 견과류와 고기를 챙겨 먹으면 되고, 평소에 채소를 안 먹었으면 채소를, 과일을 못 챙겨 먹었다면 복날이라고 하니까 과일을 먹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과일이 가진 새콤한 맛은 떨어진 식욕을 살리는데 좋을 뿐 아니라 풍부한 당분을 가지고 있어서 체력 보충에도 좋다.
단, 노인이나 어린 아이라면 단백질 섭취에 좀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고, 이왕이면 굳이 10일 간격이나 되는 복날에 맞춰서 먹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구하기 쉬운 닭가슴살이나 다른 육류를 조금씩 꾸준하게 먹는 것이 좋다. 하루도 안 하는 것 보단 하루라도 하는 게 좋고, 하루만 하는 것 보단 꾸준히 하는 게 더 좋다.
채식주의자거나 평소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던 사람이라면 복날에 더욱 단백질을 신경 쓰는 게 좋다. 종교적 이유의 채식이 아니라면 소량의 육류를 먹어 주는 것이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육류에 대한 거부감이 있거나 종교적 이유로 절대적으로 섭취해서는 안 되는 경우라면 어류나 달걀, 우유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고, 엄격한 채식주의자라면 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챙겨 먹는 것도 좋다.
만약 다른 이유를 떠나서 복날을 핑계로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 한 끼 식사를 하고, 가족끼리 외식을 할 명분으로 쓴다면. 그리고 평소에 고기를 챙겨 먹기 힘들었다면, 복날은 고기 먹는 핑계로 더 없이 좋다. 특히 바쁜 현대 사회에서 가족끼리 닭백숙 하나로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굶지 않고 사는 시대에 음식 한 끼가 건강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게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몸에 좋다고 무슨 성분이 좋니 어떤 효과가 있니 하고 광고하는 걸 먹기 보다는 평소에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먹는 것이 가장 현명한 건강을 위한 식사법이다. 그러고도 못 챙겨 먹던 것이 있으면 복날 같이 특별한 날들을 이용해 부족한 것을 채워주자.
물론 이미 체력이 소모된 정도가 커서 음식 개선만으로 충분하지 않거나 식욕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여름철 보약을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더 좋은 것은 한약을 먹을 정도 상태가 되지 않도록 미리 식사와 작업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사실 현대사회에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일단 식사와 휴식 등의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피로가 누적되거나 잠이 많아지거나 입맛이 줄어드는 경우에만 여름 한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이런 증상이 없으면 한약 먹을 돈으로 고기와 과일을 사먹자.
특히 노인들의 경우에는 심혈관계의 적응 능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한약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운이 없다 싶은 경우에는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물론 식사를 여전히 잘 하고 움직임도 활발하다면 여름 보약을 굳이 먹을 필요는 없다.
한약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미리 이야기하자면, 여름철에 체력이 소모되는 양상은 겨울철과는 또 다르고 환절기와도 다르기 때문에 보약의 종류도 다르다. 여름 보약은 시큼한 맛이 나는 경우도 많고 한약의 색도 훨씬 맑은 색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하루 만에 약이 상할 리는 없다...
한방ㅇㅇ탕이니, 한의학적으로 어디에 좋니, 동의보감에 무슨 효능이 있다느니 하는 것들은 모두 한의학에서 말하는 좋은 보양식이 아니다.
한의학에서는 균형(homeostasis)과 변화에 적응(allostasis)하는 것을 건강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누구든지 건강하게 해 주는 약이나 음식 같은 것은 없다. 한의학에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넘치는 것은 덜어 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사가 추천하는 보양식도 어떤 것이 몸에 좋다는 조언이 아니라 결국 '모자란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줄이라'는 너무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냥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게 진짜 보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