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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야 Jan 14. 2024

서로 달라도 함께 자라 가는 아이들-01

유아교육 10년 현장 스케치

몇 년 전, 자폐를 가진 천재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특이한 소재와 감각적인 연출, 탁월한 연기 등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가 되어버렸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 우영우는 몸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일상생활은 늘 불편했다. 대인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으며 독특한 말투와 행동 등으로 주변인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받고 생활한다. 하지만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 자폐증 등 환자 일부가 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부분 등 특정한 부분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증상)인 우영우는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읊고 법조문과 판례를 통째로 외우는 등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소송들을 독창적이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능력자다.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자폐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당사자와 가족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시청자들에게 각인을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몇 년 전 우리 반이었던 윤아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3세 되던 해 우리 어린이집에 첫나들이를 한 윤아는 걷는 게 부자연스러워서 움직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말도 행동도 그 연령답지 않게 어눌했다. 5세 때까지 기저귀를 찰 정도로 인지, 정서, 행동 등 모든 면에서 또래들보다 느린 아이였다. 그런 윤아가 7세 담임을 맡았던 2019년 운명처럼 우리 반이 되었다.



우리 반은 총인원이 15명으로, 등원 후 아침부터 오후 하원할 때까지 에너지 넘치고 왁자지껄하며 늘 북새통을 이루는 반이었다. 행동반경이 넓고 몸집도 커지고 힘도 세진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윤아가 잘 어울리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새 학기 첫날, 반 친구들을 소개하면서 윤아가 우리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친구임을 말해주며 같이 생활할 때 이해하고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모두 공감하며 내 말에 수긍을 해주었다. 하지만 윤아와 같이 생활하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의사소통 능력과 문제 해결력이 떨어지는 윤아는 대소집단 활동 시간에도 교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돌발 행동을 하였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자신을 때리거나 친구를 공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신체 활동 중이나 바깥놀이를 할 때 옷에 대소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난처하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가 없어서 매번 양치질을 도와주었는데 양치질을 할 때마다 거부감이 심했고 양칫물을 뱉지 않고 그냥 삼키기 일쑤였다. 기본생활습관이 배어있지 않은 윤아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윤아의 부모님은 몇 번이고 “우리 윤아 잘 부탁드려요.” “윤아 때문에 선생님 힘들어서 어떡해요.” 하시며 늘 노심초사해하시며 미안해하셨다. 그런 부모님과 수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가정과 원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윤아에게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았다.



한 번은 스킨십을 좋아하는 윤아가 한 친구에게 다가가 어깨를 만지고 안으려고 하자 귀찮다고 느꼈던 그 친구가 윤아를 손으로 세게 밀치는 바람에 윤아가 중심을 잃고 뒤로 꽈당 넘어진 일이 있었다. 윤아는 그 충격으로 약간의 발작을 일으켰고 구토를 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윤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여 급하게 부모님께 연락을 취한 뒤 윤아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일시적인 충격으로 잠깐 동안 이상 반응을 보였을 뿐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런 상황이 생긴 게 나의 부족함 때문인 것만 같아 한동안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동분서주하는 날들이 반복되면 될수록 교사로서 회의감이 들고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곤 했다. 모든 걸 감내하고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며 애정을 쏟으시는 윤아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섞인 우리 반을 내가 무사히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과연 학기가 끝나는 날까지 무탈하게 지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수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나의 얕은 지식과 굳은 각오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느껴서 그때부터 나는 장애 관련 논문과 자료, 책을 읽고 이론적인 지식을 쌓아가며 윤아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더 노력을 기울였다. 내친김에 장애 영유아를 위한 보육교사 자격증에도 도전하여 틈틈이 공부한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몇 개월이 지나자 우리 반에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아이들이 윤아의 도우미를 자처하며 화장실을 갈 때나 급간식 배식을 할 때, 정리를 할 때 등 교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윤아를 도왔다. 위험하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교사에게 바로 알려 재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윤아가 활동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해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돌출 행동이나 이상 행동에도 이해하며 기다려주기도 하였다. 윤아 역시 언젠가부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현저히 줄어들고 대소집단 활동을 할 때도 가만히 앉아서 교사와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표정도 한층 밝아지고 친구들과 교사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는 등 상호작용하는 모습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아에게 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놀잇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윤아가 갑자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쉬... 쉬 마려워요...”하고 웅얼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평소에 한 단어조차 구사하기 힘들어하던 윤아가 드디어 문장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반 아이들 중 한 명이 “선생님, 처음으로 윤아가 쉬 마렵다고 말했어요!”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을 하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고 순간 교실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으로 한바탕 떠들썩해졌다. 윤아의 변화를 자기 일인 양 기뻐하는 7살 아이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를 무조건 감싸주고 능력을 추켜세워주었던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었다. 친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윤아는 그 후 옷에 실수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배변에 성공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  봄날의 햇살 최수연  >


처음에는 나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 역시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특수아통합교육 과목을 공부하면서 장애아동은 통합환경에서 또래의 행동을 보며 자기 나이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보고 따라 할 수 있다고 배웠다. 이런 모방 행동은 고립된 행동을 현저히 감소시키며 사회적 상호작용이 향상되는 긍정적인 현상을 낳는다. 비장애아동 역시 통합환경에서 장애아동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장애아동의 대변자로 장애아동을 먼저 배려하며 사회적 책임감이 향상된다. 정말로 책의 내용대로 우리 반에서도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윤아를 통해서 어느새 속 깊은 모습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런 아이들 속에서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윤아의 모습 또한 너무 대견해서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애써 내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의 주인공 고다니 선생님은 나의 롤모델이다. 이 책에는 쓰레기처리장이 근처에 있어 환경적으로 열악한 초등학교에 부임한 신임 여교사 고다니 선생님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말도 안 하고 글도 쓸 줄 모르고 오직 파리 기르는 데에만 강한 집착을 보이는 데쓰조라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나온다. 그런 고다니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로 데쓰조는 진정한 ‘파리 박사’로 인정받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정신지체아 미나코를 자기 반 학생으로 받아들여 반 아이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 양철북  >


고다니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고, 아이들을 살아있는 소중한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았다. 이 책을 읽고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고, 윤아를 보육할 때 더디더라도 좀 더 기다리고 지켜보고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 다른 우영우, 데쓰조, 미나코, 내가 가르쳤던 윤아 같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그 아이들이 날개를 활짝 펴서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아이들이 마냥 좋고 예쁘고 함께 하고 싶어서 이 길에 뛰어든 지 올해로 10년이 되어간다. 패기와 열정만으로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초임 시절부터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부족함과 한계를 느끼는 지금까지 한 해 한 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간 수많은 어린 영혼들의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며 보람을 느끼다가도 때론 심적, 육체적 버거움에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고마워해주시는 학부모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동료 교사들의 지지와 격려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오늘도 나는 사랑을 장착한 채로 교실문을 활짝 연다. 그러면 순진무구한 어린 영혼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나에게 폭 안기며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사랑해요.”하며 사랑의 총알을 날린다. 사랑 영양제를 듬뿍 먹은 나는 살아갈 힘을 가득 충전한다. 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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