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가방에 엮인 생각들
나는 항상 가방이 크고, 짐이 많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짐을 많이씩 챙겨다니는 것도 내 성격이나 습관인데 가지고 다니면 필요할 일이 있겠지 싶어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담아 다니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워낙 평소에도 짐이 많아 웬만큼 무거운 것은 익숙하게 느끼는 편인데 오늘은 날이 더워 그런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려니까 꽤 힘들다고 느꼈다. 가방이 무거워 지게짐 들듯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걷다보니 이렇게 짊어지고 다니는 꼴이 미련하게 느껴진다.
가방에 뭐가 들었나 생각해보니 노트북, 도서관에서 빌린 책 다섯 권, 노트, 스케줄 노트, 필통, 셀카봉, 물병, 휴지, 양말, 보조베터리, 옷, 껌, 화장품 파우치, 사탕, 칫솔치약 세트, 휴지 같은 게 많이도 들어 있다.
옷이나 양말 같은 것은 지난 번에 넣어두었다가 빼지 않은 채로 그대로 넣어 챙겨나온 것이고 휴지나 물병, 노트북, 화장품 파우치 같은 것은 혹시 필요할까 싶어 챙긴 것들이었다.
물론 어떤 것이든지 있으면야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는데 매번 혹시나,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짐을 챙겨 넣으니 가방이 무겁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2주 안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매번 5권을 채워 빌려오니 오고 가며 짐이 무거운 것도 있다. 꾸준히 일 이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는 편이면서 그 버릇을 못 고치는 걸 보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분명 욕심이다 싶다.
나는 항상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보다 무거운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다닌다.
예전에는 그게 나를 더 무거운 짐도 짊어질 수 있게 하는 역량을 키울 거라고 생각해 부러 더 무겁게 나를 누르려고 했던 것도 있는데, 요즘에는 결국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를 알고 더 멀리 가는 걸 생각하려고 한다.
남자친구는 나와는 반대로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거나 아주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다닌다. 내가 메고 다니는 큰 가방과 내 성격을 엮어 짧은 글을 하나 썼어, 하고 말하고 나서 "그럼 오빠는 왜 그렇게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라고 했다.
"불안하지 않아? 짐을 안 챙겨 다니면?"
"별로 안 불안한데"
"오빠는 필요한 게 별로 없어?"
"필요하면 그때 그때 맞춰서 준비하면 되지. 예를 들어 갑자기 비가 오면 누구한테 빌린다거나 하나 산다거나. 너는 비가 올 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며칠 전부터 비가 올까 봐 걱정하고, 비가 오기 며칠 전부터 우산을 챙겨다니느라 가방이 무겁잖아"
그러고보니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도 비슷한 대화가 오고갔던 게 생각났다. 항상 앞에 펼쳐질 먼 미래를 그리고, 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눈앞에 닥친 일에 충실한 성격이었다.
예를 들어,
나중에 결혼하면 오빠는 어디 살고 싶어? 어떤 집에 살고 싶어?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 수많은 내 상상과 질문 공세에도
그 때 가 봐야 알지,
하는 식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네?
" 하고 말했더니,
"그러니까 만날 수 있는 거야. 만약에 둘이 비슷했다면 어딜 가든 둘 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다녀야 할 수도 있어. 내가 짐이 없으니까 너 가방을 들어주잖아."
라고 잘라 말했다. '이렇게 생각이 서로 다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으로 이어질 뻔 했는데, 덕분에 걱정이 쉽게 끊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또다시 내 걱정이 이어질 것을 알고 부러 단호한 투로 말했을 수도 있다. 나도 어느 샌가 고민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을 계속 끌어안고 있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담 나중에는 둘 다 적당한 무게의 가방을 나란히 메고 걷게 될까?
그것도 그 때 가 봐야 알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