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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나 Nov 13. 2021

실수와 실패의 차이-

아찔한 실패


작년 겨울,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마이리얼트립 예약 사이트를 통해 우리 숙소를 예약해주셨다며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시는 한 여성 분이 숙소로 불쑥 찾아오셨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국내 시장으로 고개를 돌려 한창 제주 쪽 프로그램을 확장하던 중이었고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한달 살기 프로그램을 사이트에 입점해줄 수 있냐고 영업 제안이 왔었다. 사이트에 프로그램 등록이 어렵다면 직접 입점까지 도와주겠다고 해서 큰 품을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 등록을 해두었는데, 예약 시스템을 확인하질 않아 손님들이 예약했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다해도 사실은 예약을 판매자인 우리 측에서 승인을 해야 예약 확정이 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분도 그런 것까지는 잘 몰라 신청을 했으니 승인이 됐겠거니, 하고 한 달 살기 짐을 챙겨 제주도로 내려오신 것이었다


‘아…’

예약을 하고 오셨다는데 방은 자리가 없으니 서로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게다가 우리 숙소는 30대 초반 청년들까지만 받는 셰어하우스였다. 눈 앞에 계신 분에게 나이 제한이 있는데 몇 살이냐고 여쭤보기가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럼 저는 어떡해요?

일정을 한 달 빼느라 그것도 엄청 고생했는데”


큰 캐리어 하나와 두터운 겨울짐을 들고 그 분이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26일 이후에는 방이 비게 되는데, 그 이후로 일정을 바꿔드려도 괜찮을까요?”


“그 이후에는 방이 있어요?” 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단 수습하자는 마음 뿐이었던 것 같다.

그 분은 본인이 기자 출신이고 이런 문제가 있는 것에서 일단은 상당히 불쾌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그 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와 작성한 기사 몇 가지를 보여주셨는데, 주로 고발과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확실하지 않으니 오시기 일주일 전쯤에 연락 한 번 꼭 주세요!

나는 그 때 사실, 속으로 생각했다. 연락이 오면, 자리가 없고 코로나 이슈가 심각한 등 아무래도 방문이 조금 힘드실 것 같다고 대답해야겠다고. 주변에 더 좋은 숙소도 많이 알고 있으니 연결해주는 수고가 들더라도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왜냐면 일단 이 상황을 통해 이 분은 우리 숙소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남기지 못했거니와 두 번째는 우리 숙소에는 나이 제한이 있고, 세 번째는 한 달동안 숙소에서 함께 지냈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차라리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사과드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다가온 26일, 나는 그 날의 일을 까맣게 잊고 일상을 보내던 그 날, 그 분은 이번에도 연락 없이 갑작스럽게 숙소로 찾아와 나를 찾았다.


“오늘 방 있다고 했죠?”

그 분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는 듯 인사를 해주셨지만 나는 머릿 속이 하얗게 질렸다

“아.. 죄송하지만 방이 없는데요”


그분은 날카로워진 눈으로 자연스럽게 숙소 공간을 둘러보며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방들에 시선을 꽂았다 ‘그렇담 이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숙소 환경에 대해 설명해줄래?’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 어떻게 해요?”

말투에 제법 날이 서 나에게 물었다.


“아… 어떻게 해드릴까요?”

내가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대답했다. 서비스에 이해가 밝은 막내는 매일같이 나를 앉혀놓고 인.사.고.과를 가르치고는 한다. 응대할 때에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마워하고 과정을 설명하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컴플레인 상황에서 대치상황을 만들고 방어벽을 만들고 말았다. ‘이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야,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며 여러 친구들에게 들었던 충고들을 곱씹었지만 나는 또 내 고집스런 성향대로 일을 풀어버렸다.


“어떻게 해주실 수 있는데요? 두 번이나 저는 비행기를 타고 여기를 왕복했고 한 달 일정을 맞추느라 든 비용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요? 그걸 다 해결해줄 수 있어요?”


화가 난 그 분의 언성이 높아졌고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지?’ 그 분 입장에서 생각하니 나였어도 화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죄송하면 어쩔 건데요’ 라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결국 최악의 대답, ‘사실 본인도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연락 없이 오시지 않았냐, 지난 번에도 예약 확정이 안 되었는데 오신 건 본인 잘못도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ㅡ 이 글을 읽으면서, ‘에이 그럼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건 실패의 기록이니까 그 때 내 입장과 생각을 가감 없이 적어보려고 한다.


그 때의 나는 일단 내 입장에서는 내가 크게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능동적인 사고가 어려웠던 것 같다.


또 두 번째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큰 나머지 이 사람이 입은 피해만큼을 도저히 내가 보상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나에게는 이미 실패한 관계이기 때문에 마주하기 싫다는 거부감이 엄청 강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안이 있지도 않았고, 또 그래놓고 상대방에게 어떤 대안이 필요하냐고 추를 떠넘겼다. 그렇다보니 내가 하는 사과는 진심이 느껴지기보다 사과했으니 그만 마무리하자는 신호로 들렸을 것이다.


이런 글을 공개했을 때 욕을 많이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도 이미 욕을 많이 먹었으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리셉션에서 내가 손님과 언성을 높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막내가 허겁지겁 달려와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저랑 이야기하시죠, 이 분은 사실 캠프 운영을 맡고 있기는 한데, 안내나 관리는 제가 하고 있습니다.”

막내가 나를 뒤로 빠지라고 밀어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부족하기 때문에 8살이나 어린 막내 동생이 대신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왜 자꾸 내 자존심이 앞서는지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한동안 사무실에서 씩씩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대체 내가 어떻게 했어야하는건데”하면서ㅡ


결국 나는 내 어리숙함에 대해 쓴 결과를 받아보게 되었다. 화가 난 그 분은 막내 동생의 진심어린 사과에도 불구하고 내 사과를 직접 받아야겠다고 하며 돌아가셨는데 전화를 몇 차례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매몰차게 끊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내드렸는데 사과 안에는 내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한 내용과 함께 당신도 잘못하지 않았냐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던 듯하다. 왜냐면 당시의 나는 미안하면서도 상황이 이렇게 벌어진 것에 대해 스스로 상당히 화가 났고 내 부족함이라고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쓴 편지가 진심으로 와닿았을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그 분은 숙박업 관련된 모든 연계 기관에 우리 숙소를 신고 넣었고 소방시설점검부터 읍사무소, 제주도청의 점검을 받으며 코로나 요주 관리 대상에 들어가게 되어 한 일여 년간을 고생했고, 코로나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리자 분들이 으레 불쑥불쑥 찾는 숙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다. 이 일은 내가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곱씹으며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기 때문에 벌써 100개도 넘는 대안이 쌓여 있는 것 같다. 좋게 해석하면 덕분에 이 위험한 코로나 시기를 단단히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대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지만 사실 이렇게 큰 일이 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내 마음대로 사람에게 쉽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큰일이 나지 않더라도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비겁하게 행동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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