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 자기 중심적인 공간
잘한 일들이 아니라 실패들을 낱낱히 기록한다는 것이 어쩐지 가학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다가도,
나 자신을 마음껏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안정감과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어젯밤에 꾼 꿈이 모처럼 생생하게 기억나서 적어볼까 한다.
어젯 밤, 꿈에서 한 여자애가 작은 양 한 마리와 그보다 작은 새끼 양을 누군가에게서 구출해내기 위해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달리는 여자애와 양 두 마리를 따라 부지런히 뛰면서 '잘 했어!'하고 응원의 메세지를 열심히 던졌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어떤 한 아늑한 장소에 숨었을 때, 여자애는 양들이 배가 고플 것이라며 가방에서 떡볶이 한 봉지를 꺼냈다.
하얀 양들이 빨간 떡볶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너가 좋아하는 거지, 양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야. 너가 좋아하는 걸 양들에게 주는 건 너 중심적인 거야'
여자애와 양들은 떠나버렸고,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꿈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켜야 했다.
꿈에서 내가 어린 여자애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나한테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 여자애가 도망가버린 걸 보면 나 스스로에게 그런 잔소리 좀 이제 제발 그만하라는 메세지 같기도 해서 측은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자기 중심적이라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 더 높은 수준의 비지니스를 하려면 상대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해'
'고객 입장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면 어떨 것 같아?'
'그건 언니 생각이지 언니한테 좋다고, 그게 꼭 나한테도 좋은 건 아니야'
상대 입장이란 과연 무엇일까.
갑자기 또 우스운 나의 실패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에 캠프 운영을 맡으면서, 운영의 '운'자도 모르던 나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아침에 예약을 확인하고, 부지런히 캠프 청소를 하고, 체크인 안내를 하고 저녁 늦게는 손님을 모을 어설픈 블로그 마케팅 글을 적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딱히 성과라는 것도 없으면서 바쁘기만 엄청 바쁘던 시절이었다.
객실이 1층에 2개, 2층에 6개, 3층에 2개가 있는 큰 공간이었기에 공용 주방이랑 복도, 화장실 등 공용공간과 외부 청소만 해도 아무리 부지런하게 해도 오전 두어 시간이 금방 날아갔고 체크인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안내하고 하면 오후 시간이 금방 날아가서 객실 청소는 도저히 할 시간이 안 났다.
주로 한 달 살기 손님들이었기 때문에 객실 같은 경우는 사용하는 친구들이 직접 청소할 수 있도록 룰을 만들었는데 반발이 꽤나 컸다.
돈을 내고 오는데 왜 내가 객실을 치워야 하냐는 것이었다. 아니면 아무 말 없이 더럽게 사용하고, 그대로 체크아웃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공간에 대한 정의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제대로 된 룰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사람들이 한 달동안 전혀 치우지 않고 나간 화장실을 청소한 기억은 구역질이 난다. 오줌 때가 켜켜히 배겨 락스를 들이붓고 한 시간을 불린 뒤 치워도 잘 지워지지가 않았다. 가장 최악이었던 방에 머물던 사람은 한때 히트곡으로 꽤나 유명했던 래퍼였는데, 나는 그 사람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절대 그 노래를 듣지 않는다. 나에겐 지저분한 침대와 화장실의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숙소에 머물 때면 꼭 청소하고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
어쨌든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묘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객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내가 직접 비워주면서 객실 점검을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청소를 직접 하라고 했을 때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게 화장실 휴지통 비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걸 해주면서, 객실 청소를 진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법이었다.
나름 괜찮았던 방법이었는데, 또 하나의 문제는 객실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청결의 기준이 달라 갈등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누구에게는 깨끗한 방이, 누구에게는 더러운 객실이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시각이 달랐고, 또 청결의 기준도 각자 다 달랐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캠프 복도에 이런 문구를 붙여 놓았다.
'여기가 네 방이라고 생각해. 네 방도 더럽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문구가 자기 중심적인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 입장에서 필요한 기준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만든 기준점. 공간에 대한 정의.
캠프를 운영하면서 공간은 결국 그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이용하게끔 만드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배워갔다.
그런 것들을 배워가면서 카페나, 공간들을 볼 때 이 공간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유심히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간에는 반드시 그 깊이가 담긴다.
내가 생각하는 잘 만들어진 공간은 '사람들이 기획자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설령 그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머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공간을 만드려고 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이며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인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일이다.
며칠 전, 여유를 내어 강릉에 있는 테라로사 본점엘 다녀왔다.
이런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왜 테라로사를 찾는 걸까?' 하면서.
낙엽이 떨어지고 가을햇볕이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풍경이 널찍한 창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