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이후
궁녀가 궁을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방출(放出)이라 불렀다. 왕이 바뀌거나, 전각이 폐쇄되거나, 감원이 필요할 때 궁녀가 내보내졌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들어올 때도 선택이 없었고, 나갈 때도 선택이 없었다.
기생 시리즈 9편 "퇴기의 삶"에서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기방을 나간 기생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같았다. 모른다. 기록이 없다.
궁녀도 마찬가지다. 방출된 궁녀의 이후를 기록한 사료는 거의 없다. 궁의 기록은 궁 안의 일을 남겼다. 궁 밖으로 나간 사람은 더 이상 궁의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퇴기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기방을 나간 기생에게는 적어도 기방 밖의 세계가 있었다. 기생은 궁녀보다 바깥 경험이 많았다. 손님을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고, 기방 밖을 오갈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퇴기 된 기생이 사설 기방으로 가거나 첩이 된 것은, 바깥 세계와의 접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궁녀는 달랐다.
8편에서 다뤘듯이, 궁녀는 궁 밖을 몰랐다. 네다섯 살에 들어와 수십 년을 궁 안에서만 살았다. 바깥의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방출된 궁녀가 궁문을 나서는 순간, 그 궁녀 앞에 펼쳐진 것은 자유가 아니라 낯섦이었을 것이다.
갈 곳이 있었을까. 부모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형제가 있더라도 수십 년간 연락이 없었다. 혼인이 금지돼 있었으므로 남편도, 자식도 없었다. 궁 안에서 배운 기술 — 바느질, 요리, 의례 절차 — 은 궁 바깥에서 쓸 곳이 제한적이었다. 궁중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것이 민간에서 밥벌이가 되지 않았다.
기술은 있으나 자리가 없다. 퇴기의 삶에서 했던 말이 여기서 반복된다. 제도가 가르친 기술을, 제도가 필요 없어지면 제도와 함께 버리는 구조. 기방에서도 그랬고, 궁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궁녀의 방출이 퇴기보다 더 가혹한 점이 하나 있다.
기생은 기방 바깥의 세계를 알았다. 알면서 나간 것이다. 궁녀는 궁 바깥의 세계를 몰랐다. 모르는 곳으로 나간 것이다. 아는 곳을 잃는 것과 모르는 곳에 놓이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상실이고, 후자는 유기(遺棄)다.
현대 심리학에서 제도적 유기의 특성 중 하나가 '준비 없는 전환'이다. 제도가 사람을 오랫동안 특정 환경에 적응시킨 뒤, 갑자기 다른 환경에 놓는 것. 군인이 전장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 수감자가 출소할 때 겪는 것과 같다. 제도가 적응시킨 만큼 전환이 어렵다. 궁녀는 수십 년간 궁에 적응됐다. 적응의 깊이만큼 전환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방출된 궁녀 중 일부는 양반가에서 의례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 궁중 예절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수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수의 경우였고, 대부분의 방출 궁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생 시리즈에서 퇴기의 세 갈래를 이야기했다. 첩이 되거나, 사설 기방으로 가거나, 사라지거나. 궁녀의 방출에도 비슷한 갈래가 있었을 것이다. 양반가에 들어가거나, 민간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사라지거나. 세 번째 갈래에 대해서는, 기생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른다.
두 시리즈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구조가 보인다.
기방이라는 제도가 기생을 만들고, 필요 없어지면 버렸다. 궁이라는 제도가 궁녀를 만들고, 필요 없어지면 버렸다. 공간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다. 구조는 같다.
제도는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데려온다. 필요가 사라지면 사람을 내보낸다. 데려올 때는 절차가 있다. 내보낼 때는 절차가 없다. 들어오는 문은 기록되고, 나가는 문은 기록되지 않는다.
기생의 기적에 나간 날짜가 없듯이, 궁녀의 기록에도 방출 이후의 삶은 없다.
기록은 제도 안의 사람을 남긴다. 제도 밖으로 나간 사람은 남기지 않는다. 안에 있을 때는 이름이 있었고, 밖으로 나가면 이름이 사라졌다.
두 시리즈의 끝이 같은 자리에 닿았다. 기록되지 않은 자리. 담 안에서도, 담 밖에서도, 같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