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돌아왔지만, 더 선명해진 나의 길
멀리서 보니 선명해졌다
멀리서 보면 가까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이 선명해진다.
물러서야 비로소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는 것처럼.
한국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나는,
아이들의 어학연수와 나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계획은 3년.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기대보다 두려움이 먼저였다.
“내가 여기서도 나일 수 있을까?”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심지어 내가 만든 브랜드조차
이곳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국에서 쌓아온 신뢰도, 이름도, 기록도
이곳에서는 모두 첫 시작이고 도전이다.
모든 것이 ‘없음’으로 돌아간 자리에서
나는 공허한 캔버스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은 아이들 옆에서 시작되었다
도착 후 6개월은 아이들의
국제학교 적응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생각했다.
‘공방을 열 수 있을까, 전시회를 열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계획과 달랐다.
전시회 일정은 자꾸 미뤄졌고,
확신보다 질문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친구들을 주말에 초대해
작은 한지 공예 시간을 열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에게는
작은 소품을 함께 만들자고 권했다.
책갈피, 손거울, 사탕함…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에
“우리나라 전통 한지로 만든 거예요.”
짧은 메모를 붙여 선물했다.
그렇게 한지를 알리는 일은 멀리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브랜드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낯선 도시에서 공방을 연다는 건
화려하지 않았다.
멋진 공간도, 거창한 마케팅도 없었다.
그저 한지를 꺼내 놓고,
아이들과 웃으며,
엄마들과 이야기하며
작품 하나를 건네는 일.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이 만드는 종이는 조용하지만 따뜻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았구나.’
타지에서의 시간은 내 브랜드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브랜드는 결국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작은 정성과 진심이 쌓여
만들어지는 언어라는 것을.
다시 한국으로, 단단해진 나로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하려던 시점,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의 학교는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외출은 막혔다.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은
1년을 훌쩍 넘어섰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정을.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과
선명해진 방향을 품고 귀국했다.
멀리 갔다 온 그 시간은
내 삶의 중심을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놓지 않은 하루가 만든 브랜드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나요?”
나는 잠시 웃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하루하루를 놓지 않았을 뿐이에요.”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뛰어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품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한번 붙잡았을 뿐이다.
아이를 키우며, 작업을 하고, 실패를 견디며
한 계절씩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그 시간이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당신의 하루에도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길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일로 삼을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글이 그 고민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용기라도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문장
"브랜드는 화려함이 아니라, 묵묵히 이어간 시간에서 피어난다."
여기까지 함께 걸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 편의 글을 쓰며,
저 역시 처음의 마음을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걸 오래 붙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질문 앞에서, 답은 늘 같았습니다.
놓지 않은 하루, 그것이 브랜드를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 연재는 끝이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육아하며 공방 브랜드가 되는
공방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깊고 구체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저의 23년 공방 경험을 담은 책
**『엄마의 취미, 브랜드가 되다』**에서 만나보세요.
당신의 하루에도 조용히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길 바랍니다.
오늘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번째 이야기로 곧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