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지금도 작업대에 앉는 이유

그만두지 않는 사람의 습관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

24년이면
충분히 오래 한 시간 아닐까.

공간도 자리를 잡았고,
‘한지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름도 제법 익숙해졌다.
작품을 알아봐 주는 사람도 제법 생겼다.

굳이 오늘도
작업대에 앉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또 앉는다.

예전에는 절박해서였다.

아이를 키우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붙들었던 시간.

이 일이 아니면
하루가 전부 타인의 시간으로만 채워질 것 같았다.

탈색기법과 채색기법으로 한지 작업중

그때의 작업대는
생계라기보다 숨구멍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조금은 안정되었고,
조금은 단단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여전히 이 자리에 앉는 걸까.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던 해도 있었고,
몸이 먼저 지친 날도 있었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걸 보며
잠시 흔들리던 적도 있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그 생각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작업대 앞에 앉았다.

한지를 펼치고
풀을 바르고
조심스레 붙이고 또 덧붙인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은 조금 뒤에 따라온다.

신기하게도
복잡하던 마음이
그 순간부터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무의식처럼 작업대에 앉아
한지를 만지고 있으면
어지럽던 머릿속이 잔잔해진다.

어느새 작품에 몰두하게 되고
마음에 얹혀 있던 무거움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나는 그 시간이 무지 좋다.

그때 알게 되었다.
이 일은 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지꽃이 피었습니다 한지꽃과 한지인테리어 조명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24년이나 하셨으면 이제는 쉬워졌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쉽지는 않다.
다만 익숙해졌을 뿐이다.

열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리듬은 오래간다.

처음에는 설렘으로 시작했고,
중간에는 책임으로 버텼고,
지금은 리듬으로 이어간다.

그래서 나는 꺼지지 않는다.
오래 하는 사람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큰 성취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해진 자리에 앉고,
정해진 순서로 손을 움직이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그 반복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 일을 하며 나는 수없이 많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꽃을 피운 건 작품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지꽃이 피었습니다 핸드메이드 작품

포기하지 않는 연습,
흔들려도 다시 앉는 연습,
잘되지 않아도 계속하는 연습.

그 연습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업대에 앉는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다만 이 시간이 나를 정리해 주고,
이 반복이 나를 지켜준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문장
오래가는 사람은 불타는 사람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는 안다.
이 일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를 잃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한지를 펼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또 한 장을 붙인다.

제8화는 "비교대신 기록을 선택한 날들"로

찾아뵐게요


오늘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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