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리단이 곧 팬덤, 퍼슈트 아이돌

바스티Bastie - First Step

by 두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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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3일, 미니 1집 <첫걸음(First Step)>과 함께 세계 최초의 퍼슈트 아이돌 ‘바스티Bastie’가 데뷔했다. 까미, 신뇽, 엠버, 보름, 디르로 구성된 이 5인조 보이그룹은 파격적인 외형으로 데뷔하자 마자 ‘보이그룹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또는 ‘수컷그룹으로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2년 전 EXO가 <늑대와 미녀>로 ‘내가 wolf! 아우우우’를 통해 남자에게 무서운 짐승같은 매력이 있음을 어필했다면, 바스티는 복실복실한 퍼슈트를 통해 수컷에게도 고양이같은 매력이 있음을 어필한 것이다. ‘인간의 짐승화’와 ‘짐승의 인간화’라는 두 대척점을 고려하자면, 이 새로운 시도는 과거 짐승돌들이 쌓아온 거대한 석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식빵을 구워버리며 ‘진짜 짐승은 무엇이었는가’를 일깨우는 영리하고도 살벌한 출사표다.


너무도 생경한 ‘퍼슈트’와 ‘아이돌’ 두 단어의 조합 이전에 ‘퍼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퍼슈트는 퍼리 코스프레를 위한 코스튬이고, 따라서 퍼슈트 아이돌이란 ‘퍼리 아이돌’의 순화어에 가깝다. 퍼리 아이돌, 용어부터 왠지 ‘군필 여고생’이나 ‘식용 락스’처럼 건드리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도대체 퍼리는 무엇일까.

퍼리(Fury)는 서양권에서 유래한 단어로, 털이 달린 동물이 수인과 같이 인간화된 모습을 의미한다. 익숙한 이미지를 떠올리자면 미녀와 야수에서 등장하는 야수나 ‘X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파란색 수인, 비스트가 되겠다. 퍼리는 인간과 동물, 그 사이에 위치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길고양이처럼 완전한 동물은 의인화되지 않았으므로 퍼리가 아니고, 고양이 귀가 달린 인간은 동물의 인간화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인간의 조건부 동물화’에 가까우므로 퍼리가 아니다. 털이 달려 있는데, 이족보행을 하며, 왠지 영어든 한국말이던 언어를 쓰다가 보름달이 뜬 날 밤에는 머리를 쳐들고 울음소리를 낼 것 같은, 그런 것이 바로 퍼리다. 이야기나 그림 속에서만 등장할 수 있는 가상의 대상인 것이다.

동양권인 한국과 달리 영미권에서는 다양한 동화나 만화에서 의인화된 동물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 창조된 새로운 캐릭터성이 아니라는 말인데, 그런 만큼 이미 친숙한 개념이라 퍼리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퍼리’라는 단어에는 밈meme적인 특성이 섞여 있어서, 간간히 Yiff로 불리는 ‘퍼리 포르노’에 이끌리는 취향까지가 의미로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일명 ‘음지’의 용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더 잦다. 이러나 저러나 퍼리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곧 ‘털 달린 수인이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일명 ‘퍼리단’들은 숨어있거나 자신만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래도 현재 한국에서는 여섯 개 남짓으로 대표되는 수인 팬덤 커뮤니티가 있으며, 2020년부터 현재 4회차를 맞은 ‘퍼리조아’라는 독특한 퍼리 컨벤션이 개최되고 있을 정도로 꽤나 수면 위로 올라온 상태다. 물론, 인터넷에서 노출되는 퍼리단의 주요한 활동은 이상하게도 매혹적인 털복숭이 캐릭터를 보며 ‘가능’이라고 외치는 정도기 때문에 퍼리단이 가진 광기의 이미지는 벗어지지 않은 상태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말 또한 날치처럼 비상하기 직전이라기 보다는 겨우 숨통이 트인 상태라고 보는 편이 옳겠다.

물론 필자는 퍼리단이 아니고, 털복숭이 캐릭터를 보고 볼이 붉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마이너한 광기의 집단과 어쩌면 가장 메이저한, 아이돌이라는 집단과의 만남에는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역설적인 독특함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음(지)과 양(지)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음지와 양지의 조화다. 마이너한 취향이 메이저한 취향과 합해져 수면 위로 올라오는 현상. ‘아이돌’로만 한정해도, 이러한 현상은 ‘바스티’가 최초로 보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선례들이 있었고, 어떤 이유를 가늠할 수 있겠으며, 이러한 현상의 반복은 지금의 유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독특한 장르를 차용한 아이돌은 꽤나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엔믹스NMIXX는 두 가지 이상의 장르를 넘나드는 ‘MIXX POP’으로 다양한 시도를 앨범에 담아 왔으며, 특히 최근의 EP 앨범인 ‘Fe3O4: FORWARD’는 국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자신들의 시도가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였다. 프로듀서 250은 일렉트로니카에 뽕짝을 혼합한 ‘뽕버스’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런 250을 프로듀서로 내세운 뉴진스는 Y2K의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룰라 등이 선보인 뉴잭스윙 장르를 부활시켜 힙합 등을 적절히 섞은 새롭고도 익숙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최근에 데뷔한 올데이프로젝트AllDayProject는 무용, 힙합, 음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멤버를 합쳐 그룹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고, 데뷔 싱글인 FAMOUS는 시작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며 그 파급력을 인증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의 이면에는 어쩌면 아이돌판의 과포화 현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 이후 대형, 중소 기획사를 막론하고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으며, 극소수만이 큰 집중을 독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신인 아이돌에게는 뚜렷한 차별점, 컨셉이 필요했다. 특히 현재인 5세대 아이돌 계보에서 (논쟁을 고려하자면 4세대 아이돌을 포함해서) 빈번하게 보이는 현상인데, 차별점을 갖기 위해서 마이너한 장르/취향을 내세운 아이돌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3D 캐릭터를 아이돌로 내세우는,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와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로 대표되는 버추얼 아이돌이다.

모션 캡쳐 기술을 활용해 사람이 직접 나서는 대신 버추얼 캐릭터가 새로운 인격을 가진 것처럼 등장하는 버추얼 유튜버나 버추얼 캐릭터는 비교적 최근, 인터넷 방송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서브컬쳐 문화다. 이 발전에는 2020년 이후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온 오타쿠 문화와 증강현실(AR) 및 VR 기술 발전이 한몫했다. 넷플릭스 등에서 대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문화와 그 캐릭터는 ‘리그오브레전드’의 2D 아이돌 ‘K/DA’나 아이돌 ‘에스파aespa’의 3D 분신과 같은 방식으로 조금씩 음악 장르와의 혼합이 시도되었다. 기존에도 강했던 오타쿠 문화와 그 팬 베이스에 더불어, 모션 캡쳐 기술과 하드웨어의 발달은 버추얼 유튜버의 탄생을 가속시켰다. 특히, FaceID 기능을 위해 애플이 아이폰 등에 탑재한 ARKit은 얼굴이나 표정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핸드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페이셜 버튜버 생태계 구축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VR 기술의 발달에 힘을 얻어 많은 페이셜 유튜버들이 전문적인 모션캡쳐 버튜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왔고, 전신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질감 없는 버추얼 캐릭터들을 현실화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당연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는 절륜한 캐릭터와 보컬, 뛰어난 퍼포먼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실물’ 아이돌보다 높은 팬파워를 보이며 뉴진스보다 이른 기록으로 데뷔 최단기간 내에 멜론 빌리언스 클럽에 입성했고, 빌보드 코리아 및 빌보드 재팬에서 1위를, 빌보드 글로벌 200에도 순위를 올리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 또한 2023년 빌보드 코리아 3위, 빌보드 글로벌 167위에 오르는 등 기록적인 성과를 내었는데, 유명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이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으로 발탁돼 비교적으로 비전문적인 과정으로 음악이 작업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오타쿠 문화가 힙한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서브컬처 문화가 키치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즈음의 판도를 고려하자면 마이너와 메이저의 조합, 음지와 양지의 조합은 하나의 유망한 유행코드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면 퍼슈트 아이돌 ‘바스티’또한 버추얼 아이돌처럼 아이돌판에 신개념 덕질 트렌드를 가져올 수 있을까?


퍼슈트라서 아쉬운 퍼슈트 아이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당장은 힘들 듯 보인다. 특히 아이돌판에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둘이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음악성이고 두 번째는 퍼포먼스다. 새로운 시도가 받아들여지려면 먼저 기본적인 부분에서 이질감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본기가 떨어진다면 ‘특별한 시도’ 이외의 매력 포인트는 없고 그 때부터는 그 특별함에 매달린 일명 단골 팬들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마이너한 특징을 특별한 시도로 내세웠다면 팬파워를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 플레이브와 이세계아이돌은 일단 음악이 듣기 좋았기 때문에 그들이 버추얼 캐릭터임은 몰라도 음악이 좋아 입문한 사람들이 많았고, 버추얼 아이돌의 특성을 잘 살린 콘서트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로 이질감의 벽을 낮췄다. 반면에 바스티는 음악성과 보컬, 춤이 모두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전통적인 청순 컨셉 아이돌의 데뷔곡 느낌이 낭낭한 음악 자체는 상큼하고 좋다. 진부하긴 하지만 프로듀싱 자체는 좋은데, 보컬을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어갔는지 모를 오토튠이 음악의 상큼함을 반감시키고, 무엇보다 가사가 너무 진부하다. 바스티의 <Pretty U> 커버(원곡 Seventeen)를 보아도 보컬의 아쉬움은 여전해서 오히려 상큼함이 아닌 다른 분위기의 보컬이 궁금할 정도다. 아이돌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댄스 브레이크도 있는데 퍼슈트가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탓에 멤버들의 두껍고 복실복실한 허벅지가 무용하게 느껴진다. ‘댄스 브레이크를 넣을 만큼 퍼포먼스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춤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노인복지관의 건강관리 재활댄스를 연상시키는 단순한 몸짓에 가깝게 느껴진다. 퍼리단의 주목을 끌 만한 상큼발랄함은 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나쁘지 않으나, 퍼슈트와 오토튠, 퍼슈트와 댄스 브레이크, 어찌보면 모두 퍼슈트 때문에 실패한 셈이다.


그래도 좋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마이너 장르와 메이저 장르가 대성하는 가장 좋은 경로는 역시 메이저 장르의 거대한 자본력인데, 대성하지 않더라도 문을 두드리는 시도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성을 찾는 긍정적인 발판이 된다. 바스티는 다양한 동물군(아마도 곰, 늑대, 여우, 용, 토끼)의 매력을 개성있는 퍼슈터와 귀여운 스타일링이 돋보이게 만들었으니 아직 <First Step>인 만큼 나머지는 차차 채워나가면 된다. 내내 새로운 시도 얘기를 해서 말인데, 이왕 새로운 시도를 엿보겠다면 이런 방향은 어떨까? 요즈음은 로맨스 판타지와 AI를 합쳐서 ‘대저택의 주인이 되어 메이드들을 내 맘대로 다뤄보자’, ‘역하렘 학원물의 잘생긴 4명의 남주들 양동생으로 빙의해버렸다’와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장한 라이브 AI 채팅도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잘 나가는 AI 친구들을 모아서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거다. 역하렘 학원물 동생, 황실의 아나스타샤, 북부대공 베일 실크하드, 삼인조 그룹을 만들고 목소리는 보컬로이드로 입히는 거다. 요즈음은 Sora와 같은 인공지능 비디오 메이킹도 자연스러우니까… 전부 컴퓨터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점에서 이런 게 사실 리얼-일렉트로닉이 아닐까. 아톰을 만들듯이 리얼-일렉트로닉 아이돌을 만들어서 K-Pop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는 것이다. 필자도 AI는 다양하게 구독하고 있으니, 관심과 자본력이 있는 JYP, SM, YG, 하이브… 제작문의는 언제나 환영이다.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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