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wis Taylor <Lewis Taylor>
오래 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잠깐 보았을 때에는 몰랐다가, 한 번 더 보았을 때에는 매력을 조금 느꼈다가, 자세히 보고 나서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두고 매력을 감추고 있다고 쉽게 표현하지만, 사실은 첫눈에 그 매력을 알아차릴 만큼 우리의 눈썰미가 좋지 않았던 경우도, 또는 아무런 이유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에펠탑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처음에는 부정적이었거나 무관심했던 대상도, 반복해서 보거나 접하게 되면 점차 호감이나 긍정의 감정이 생기는 심리 현상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처음 에펠탑이 건설되었을 때 파리의 시민들은 흉물을 세웠다며 반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매력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이 이 명칭의 이유라고 합니다.
'노출 효과'나 '단순 노출 효과', 또는 '친숙성의 원리'로 알려진 심리학 용어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노출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대상에 대한 호감도는 높아집니다. 노출 효과의 예시로, 대만의 한 남성이 장거리 연애 상대인 여성에게 2년 동안 400통의 편지를 배달했고, 여성은 결국 자주 보게 된 우편배달부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효과를 최초로 증명한 논문 또한 반복 노출된 사진 속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만큼 (1968년, 로버트 볼레스와프 자욘스의 'Attitudinal Effects of Mere exposure') 사람을 대상으로 쓰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언어나 사물에 대해서도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오래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과학적인 근거로 관찰된 심리적 현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어릴 적, 형의 추천으로 루이스 테일러(Lewis Taylor)의 <Lewis Taylor>을 접했습니다. 1996년의 앨범이었는데, 일부 곡의 가사를 외울 정도로 들었으나 당시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때 영어 수행평가로 비틀즈의 'yesterday'와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my love'를 단순히 따라 불렀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당시는 산만함을 죽이기 위해 습관적으로 줄 이어폰을 귀에 꽂던 시기다 보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음악도 맘에 들지 않는 급식처럼 꾸역꾸역 들었습니다. 루이스 테일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Eric Benet의 'Hurricane'은 트랙을 넘기지 않는 이상한 습관 덕분에 불쾌감을 반복적으로 느꼈던 노래였습니다. 왜 그 노래를 싫어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노스탤지어와 불쾌함이 반반씩 섞인 기묘한 음악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무튼, 루이스 테일러를 한창 듣던 때가 얼마나 예전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그 이후로 다양한 R&B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설적인 스티비 원더(Steve Wonder)와 마빈 게이(Marvin P. Gaye)부터, 1990년대의 컨템퍼러리 알앤비와 2000년대의 댄스 알앤비는 잘 듣지 않았지만 2010년대에 위켄드, Miguel과 함께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선도한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 그 맥을 이은 조지(Joji), 신예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와 SZA, 네오 소울의 강자인 디안젤로(D'Angelo)와 맥스웰(Maxwell),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 펑크와 재즈가 섞인 썬더캣(Thundercat), 앤더슨 팩(Anderson. Paak)까지. R&B 장르인 줄도 모르고 단순히 '좋은 음악'으로 많은 R&B 음악을 접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루이스 테일러(Lewis Taylor)의 <Lewis Taylor> 앨범을 다시 들었는데, 이번에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Bittersweet와 Whoever는 정말 몇 번을 돌려 들어도 그 전율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무언가 요상한 불쾌감을 선사하는 조 진행과 그와 달리 불쾌함을 미리 해소하려는 듯한 보컬, 그리고 결국에는 완전한 해소로 나아가는 지점까지, 저는 왜 소름이 돋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닭살을 지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좋은 줄도 모르고 들었던 음악이 이제는 제 플레이리스트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루이스 테일러의 음악은 오랫동안 듣지 않고 있다가 불현듯이 다시 듣게 되었으니 이걸 에펠탑 효과라고 부를 수는 없겠네요. 아니면, 유사한 타 R&B 장르의 음악에 자주 노출됐으니 이것도 일종의 에펠탑 효과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ZxWERJWFq7g
여하튼, 간혹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도 모르게, 점차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는 것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왜 아름다운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또 어떤 것들은 자주 접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접했을 때 색다른 감흥을 주기도 합니다. 여전히 왜 아름다운지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Whoever의 가사처럼 'I know from experience'의 방식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충분한 시간의 간격을 필요로 하는 것뿐일지도, 아니면 더 단순하게 '단순 노출 효과'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저 아름다우니 듣는다,고 할 수밖에요.
어릴 적 많이 듣던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그 노래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본 적도 있으신가요?
*Some time legends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