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ule <softscars>
어릴 때에는 텔레비전의 잡음이 그렇게 무서웠습니다.
24시간 방송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새벽동안 대부분의 채널에서 잡음이 나왔습니다. 하얀색, 까만색, 때로는 RGB 색상으로 보이는 무작위의 작은 점들이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리는 그 괴상한 화면을 보고 나면 저는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왠지 텔레비전이 놓인 거실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었고, 무언가 굉장히 무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전조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잡음은 어디로 채널을 돌려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너에게 도망갈 채널은 없다, 설령 네가 999번까지 채널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리모컨의 배터리가 다 닳기 전까지도 네가 정상적인 프로그램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위협적인 선언처럼 느껴지는 기괴한 장면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화면은 주로 과거에 많았던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방송국이 방송을 송출하면,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정상적인 방송 신호와 더불어 우주 또는 텔레비전 주변의 다양한 전자 장치에서 발생하는 작은 신호들(노이즈)을 함께 수신합니다. 방송이 송신되는 낮 동안에는 방송 신호가 가장 강하게 잡히기 때문에 노이즈가 상대적으로 무시될 만큼 작지만, 방송국이 방송을 송신하지 않는 새벽 동안에 텔레비전은 노이즈만 수신합니다. 텔레비전에는 게인 컨트롤이라는, 작은 방송 신호도 충분할 정도로 증폭시켜 주는 자동 증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는데요, 텔레비전이 노이즈만 수신할 때에 이 게인 컨트롤은 그 노이즈라도 '충분할 정도로' 증폭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작은 전자기파나, 근처의 전자장비로부터 수신되는 노이즈들이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랜덤한 화면으로 과장되게 표현되게 되고, 이것이 텔레비전 잡음의 이유입니다. 시골에 사셨던 분들이라면 방송이 잘 잡히지 않을 때에 MC의 목소리 너머로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많았다는 기억이 나실 겁니다.
아무튼 간, 이런 노이즈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요?
단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NO입니다. 노이즈는 다양한 음높이들이 리듬 없이 뒤섞인 상태니까요. 일반적으로 음악은 구분되는 소리를 구분되는 시간 속에서 조직하는 행위이고, 여기에는 조성이나 무조, 모달, 리듬과 음색 등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노이즈에는 이런 성분들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으로, 이런 노이즈로 음악을 구성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YES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분되는 노이즈를 일정한 리듬으로 배치하거나, 노이즈가 가진 평균적인 음높이를 화성학적으로 나열하면 최소한의 의미로 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겠네요.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노이즈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 음악에 적절히 섞어낸다면 듣기 좋은 음악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시골 텔레비전의 잡음 섞인 음악방송도 우리가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듯 말이에요.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는 노이즈를 도구로 활용하는 장르도 물론 있습니다. 정확히는, 스피커가 있는 전자장치나 영상, 음성 등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오류인 '글리치(glitch)'를 활용하는 장르라고 설명하고, 말 그대로 글리치팝(glitch pop)이라고 부릅니다. '발로란트'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글리치팝'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스킨 묶음으로 연상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1990년대에 시작된 글리치팝 장르는 전자음악 장르의 하위 장르로서 발생했습니다. 개념적으로는 미래주의 예술가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의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을 근원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루이지 루솔로는 '인토나루 모리'라는 소음 발생기를 악기로 제작하기도 했는데, 예술과 음악이 많은 부분에서 맞닿아있는 것처럼, 이 '인토나루 모리'는 어디까지를 음악적 재료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글리치팝이라는 장르 자체는 유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르에 발을 걸친 유명한 아티스트를 꼽자면 비요크 (<Vespertine>에서), <The Age of Adz>로 유명한 Sufjan Stevens,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FKA twigs 정도가 떠오르네요. FKA twigs는 2025년에 두 장의 앨범을 냈고, 그중에서도 <Eusexua>는 GD의 'One of a kind'를 샘플링한 것으로 한국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티스트들은 아방가르드 팝이나 아트 팝, 일렉트로닉 장르로 규정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당연하게도, 글리치팝을 주력으로 하는 아티스트는 크게 유명하지 않습니다. 글리치팝은 헤이와이어(Haywyre)나 APEK과 같이 일렉트로닉, 덥스텝, 일부 재즈를 함께 퓨전 한 DJ들이나 아직 아마추어인 아티스트들이 이끌고 있는 씬에 가깝습니다.
그중에서도 yeule은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정규 1집부터 글리치팝으로 시작했고, 정규 2집인 <Glitch Princess>는 피치포크에서 8.3점을 받으며 Best new album에 올라 글리치 프린세스가 탄생했음을 알렸습니다. 3집인 <softscars>도 마찬가지로 '육체의 부패, 훼손 등의 분리와 단절을 통해 육체를 탈출하는 것에 몰두하는 강력한 곡들'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8.5점으로 Best new album에 올랐습니다. 2025년 발매된 4집 <Evangelic Girl is a Gun> 은 이전 앨범들에서 보인 긴장감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음악이라 오히려 입문용으로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yeule의 뉴메탈과 그런지 사운드, 그 강렬한 분노의 사운드 때문에 귀에 파상풍이 오지 않으려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3집 <softscars>가 좋았습니다. 특히, 2번 트랙 'sulky baby'는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사운드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를 좋아하셨다면 꼭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분 13초경의 강렬한 노이즈 이후로 전개되는 높은 옥타브의 훅은 정말, 철로 만든 달 위에서 뛰어노는 감상을 만드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ca7zUSNpL70
여담이자 마지막으로 넘어가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종교가 없고, 포교를 할 마음도, 신성모독을 할 마음도 당연히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실험적 일렉트로닉이나 사이키델리아를 좋아하던 일부 음악 팬들에게 밈으로 소비되었던 영상을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2015년 초에 '부도덕한 성관계 금지'라는 굉장히 오묘한 찬송가가 올라왔는데, 올라온 영상은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오묘한 내레이션이 깨지고, 반복되고, 이상한 글리치들이 영상에 산재했습니다. 독보적인 네이밍과 이런 영상 오류를 이유로 전위적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가장 순수하게 사이키델릭 한 음악‘이라며 인기몰이를 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에 음원은 정상적으로 수정돼서 다시 올라왔지만, 정상본이 올라오기 전까지 그 불쾌하고 무서운 영상이 아동용 영상으로 분류되었으니 많은 순수한 아이들의 악몽 재료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래의 영상은 정상적으로 수정된 뒤의 영상입니다만, 여전히 불쾌하게 들릴 수 있으니 보지 않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운드가 조금 무섭습니다.
손상되었던 기존의 영상도 링크를 남겨드립니다. 사실 저는 밤에 듣고 정말 오줌을 쌀 뻔했습니다. 혹시라도 너무나 궁금하시거나, 죽어도 글리치팝이 좋으시다는 분들에게만. 또는 호러 무비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정말로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손상된 버전의 영상은 이 링크(https://youtu.be/phYg8FIH1H4)에 있습니다.
아무튼 간, 글리치팝이라는 장르는 꽤나 신선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빚기 위해 기존에 활용했던 악기들, 그 악기들을 넘어서 비주류로 취급되는 악기들, 그것들을 넘어서서, 소음 그 자체를. yeule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글리치팝은 그 장르에 어울리는 기괴한 콘셉트를 무기로 삼기도 하고(FKA twigs), 때로는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장르에서의 작은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전술했듯이, 음악의 계보는 예술의 계보와 맥을 같이할 때가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예술에서는 글리치 아트라는 명칭으로 디지털 아트가 전개되었고, 넓은 의미로는 점묘법 또한 일종의 노이즈 아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락을 공유하는 것은 예술과 음악뿐 아니라 영화도, 때로는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쪽지함에 잔뜩 쌓인, 검열을 피하기 위한 이상한 성적 홍보 쪽지들을("b밤v마n다□ 여h인들을 위w한 알ㅂr생 모집!") 어떤 면에서는 글리치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요. 여러분은 글리치라는 개념이 익숙하신가요? 또는 새로우신가요?
저는 때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아예 팟캐스트 'Duncan Trussell Family Hour'와 유튜브의 일본 버튜버 영상과 랜덤한 음악을 동시에 틀어놓고 혼을 쏙 빼고는 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의 음성들과 리듬들과 음들이 뒤섞여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 장르인 슈게이즈 장르 또한, 혼란했던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도망가기 위해 노이즈를 일종의 '노이즈캔슬링'으로써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무질서한 노이즈를 질서로 통제해 나열한 글리치팝, 그리고 무질서함을 그 자체의 무기로 활용한 노이즈팝/슈게이즈는 대척점의 형제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혼돈을 질서로 표현하는 예술, 또는 혼돈을 더 큰 혼돈으로 막아내는 예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ome time legends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