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수업 外

책임감 수업 / 좋은 게 좋은 것

by 두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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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수업>


어릴 때의 일입니다. 그때의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나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두 살 터울인 우리 형제에게 두 가지의 규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불량식품을 사 먹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도로를 건너지 않을 것. 도로를 건너지 말라는 의미는 아마, 당시에 도로마다 담배를 입에 문 운전자들이 코란도 사의 훼미리 자동차나 쌍용의 무쏘를 타고 빛의 속도로 내달렸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도로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자동차 파도가 치는 작은 섬 구조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억울하게도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모두 단지 내에 위치했던 반면에 문방구나 마트는 모두 모두 도로 너머에 있었는데, 따라서 우리 형제에게 어머니의 첫 번째 규칙은 사실상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로 놀던 공간은 초등학교 옆의 작은 공터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형의 네발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형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공터의 가장자리를 내달리면 짧은 다리를 A자로 펼치고 스릴을 만끽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로 건너의 옆 단지에 '방방 아저씨'가 왔습니다. 방방 아저씨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트럭에 실은 방방, 그러니까 트램폴린을 놀이터에 설치하는 아저씨였습니다. 방방 아저씨가 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아이들은 집의 돼지저금통을 거꾸로 들고 고문하듯 탈탈 털어서 몇 개의 오백 원 동전을 집어 들고 놀이터로 나왔습니다. 보통은 십 분에 오백 원 정도의 시세였는데, 아저씨 기분에 따라 십 분은 십오 분이 되기도 하고 팔 분이 되기도 하는 식입니다. 우리 형제는 그런 소문에도 자제력을 유지하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방방 아저씨를 따라 '바이킹 아저씨'도 함께 왔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워낙 호기심이 많았던 형도 그날만큼은 어머니의 규칙을 어겨보기로 했을 겁니다.


오 미터도 안 되는 횡단보도 앞에서 형은 오지 않는 자동차를 살피려 고개를 좌우로 계속해서 돌려댔습니다. 그것이 정말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었는지 또는 형 스스로의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애초에 형은 친구의 전화를 받고 - 안녕하세요, 아무개 친구 홍길동인데 아무개 있나요 - 나를 데리고 나갈지 말지부터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형은 기어이 저를 데리고 나왔고,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 재미있는 놀이를 함께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인데, 막상 횡단보도 앞에서 형이 머뭇거렸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나는 도로 너머의 트램폴린 소리를 듣고, 박자에 맞춰 하늘을 콕 콕 찌르는 바이킹을 흘끔거렸습니다. 마침내 형이 페달을 세게 굴려 쏜살같이 횡단보도를 질주했을 때에 나는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배덕감을 동시에 느꼈고 아마 그것은 형의 등에서부터 전달된 찌릿,하는 일종의 전기신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트램폴린을 타기에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방방 아저씨를 설득하기 위해 몇 번이나 차례를 지나 보내야 했습니다. 방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고 아저씨는 고개를 몇 번 휘적였고, 형과 아저씨의 대화를 내가 모두 이해하며 앉아있던 것은 아닙니다만, 기억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고 그것은 나도 형과 함께 방방을 타면서 '형아'가 된 마음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결국 방방 아저씨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허락을 했는데, 그러고 오 분 만에 우리는 방방 위에서 날아올랐고, 그 방방 위에서 가장 가벼웠던 나는 누구보다 높게 튕겨져 올라갔다가는 등으로 착지했습니다.


어릴 때에는 등으로 착지하게 되면 - 예컨대 놀이터에서 '탈출' 놀이나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손을 놓쳐 모래에 등으로 떨어질 때면 - 순간적으로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을 아십니까. 작은 새처럼 얇은 몸뚱아리에 숨은 폐가 콱- 충격을 받고, 한 십 초간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다간 빠르게 돌아옵니다. 거기에도 무슨 의학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방 위에서 나는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는데, 캄캄한 눈이 밝아지고 처음으로 보았다고 기억하는 것은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울면서 열심히 페달을 밟던 형의 등판이었습니다. 그것이 형에게 미안해서인지, 또는 어머니의 규칙을 깼다는 사실을 곧 들킬 것이라는 예감에 상황을 혼자서 모면하기 위함이었는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도 형의 등을 붙잡고 형을 따라서 계속 울었습니다. 별로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것도 일종의 전기신호였을 지도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이런 기억입니다. 이제 둘 다 서른을 넘겼지만, 우리 형제는 아직도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남자형제에게는 무엇보다 낯간지러울 그 단어의 첫 물꼬가 언제 트였을지 맞추라고 한다면 나는 땀에 젖어 페달을 내밟던 형의 축축한 등을 먼저 떠올리겠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엿볼 때에 함께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아무튼, 등으로 넘어지지 마시고,

모두들 무병장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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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것>


공공기물 위에 시래기가 널려 있습니다. 나는 그 시래기를 공공나물이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근처에 시래기의 주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집어간다고 해도 넓은 마음으로, 그래 맛있는 반찬 해 묵어라,라고 이야기할 사람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마음 놓고 종로 한복판의 구름다리 난간에 시래기를 걸어둘 수는 없겠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재를 내 물건인 양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무적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무자극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독특합니다. 이 말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 쓰이는 말이 아니라, 보통 아쉬운 일이 일어났을 때에 쓰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나쁜 게 나쁜 거지'처럼 비관적인 말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에 내포되는 주어는 사실 '남에게'와 '나에게' 모두입니다. 남에게 좋은 게 나에게도 좋은 거다. 또는, 누구에게라도 좋은 게 나에게도 좋은 거다. 요즘같이 내게 좋은 일만 정말로 좋은 일로 취급하는 세상에, 남에게 좋은 일이라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요. 그런 사람이라면 공공재를 자신의 것인 양 시래기를 널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쓸 난간이 남의 빨랫줄로 쓰여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런 일 정도는 내 입장에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 되니까요.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시래기 여유분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텐데요. 거창하게 박애주의가 필요하다고도 생각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개인적인 여유가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의 여유분이 충분한 사람, 더 명확하게는, '좋은 마음'의 여유분이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말입니다.


그런 고로, 오늘은 내 지극히 개인적인 '좋은 것'을 이기적으로 채워보려 합니다. 부자가 되어야 기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저 좋은 일을 해도 여러분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줄 거 아닙니까.

아니라면 미안합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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