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옵니다 外

눈이 옵니다 / 머리털

by 두리안
image.png 2024.12.11. 집 앞을 항상 지켜주던 나무가 눈사람과의 싸움에 대패하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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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옵니다.


저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마는, 꼭두새벽부터 눈은 왔다고 합니다. 해가 떠도 그치지 않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도 그 흰 것들이 하늘에서 잔뜩 떨어지는 중이었고, 지금도 내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늦은 오후인 지금 세상은 눈에 폭삭- 완전히 먹혔습니다. 액정식 화이트펜처럼 온 세상 색상을 다 지우고 그 자리가 흰 색으로 꼼꼼히 덮였습니다. 그치만 어쩐지 눈이 내리는 게 세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밑색으로 덮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꼭 다음에 칠할 색이 쨍하게 잘 발현되라고 미리 피규어의 표면에 하얗게 칠하는 프라이머처럼.


그래서 눈이 내린 이 다음에 세상은 무슨 색으로 덮일까, 저는 그런 생각을 문득 합니다. 그러고는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가 까맣게 변해버린 블랙아이스와 함께 현실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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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눈이 옵니다.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1968년, 그러니까 반백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등장하는 첫 문장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깔끔한 백자를 보는 듯한 문장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설명을 덧붙일 수 없는 이 문장을 보고는, 언젠가 제가 소중하게 적었던 많은 첫 문장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몇 개를 떠올렸다간, 물론 눈이 펑펑 내리듯이 일단 다 화이트로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


프라이머 도포가 아니고 블랙아이스입니다.


아무튼 눈이 오는 날 차를 몰고 터널을 지나게 되면 이 문장이 떠오릅니다. 아마 이 문장을 보고 상상한 모습이 눈 내린 도로와 유사했기 때문이겠습니다. 터널 안에서는 새까맣게 미약한 것들만이 보였다간, 하얀 터널 구멍으로 나오고 나면 까맣던 온 세상이 하얗게 반전. 투명하게 녹은 물이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도로와 도로 양옆으로 난 끝없는 하얀 솔나무들, 하얗고 먼 산과 뿌옇고 먼 하늘. 하얀 바람과 투명하게 녹은 대기와 차가운 냄새. 특히 저는 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의 터널을 지나갈 때에 설국의 문장을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아깝게도 긴 터널은 아니고, 짧은 지하차도입니다. 소설의 맛드러지는 첫 문장은 과연 아름답고도 단순한 문장의 구조 덕일까, 혹은 그보다는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명징함 덕일까, 그 질문에 좋은 답이 되는 예시입니다.


분당의 짧은 지하차도를 빠져나오자, 내곡IC였다.

네비게이션 음성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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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옵니다.


어릴 때에는 눈이 오면 마냥 신났습니다. 뛰고 미끄러지고 던지고 굴리고 쌓고 눈이 녹아 시리는 손을 귀에다가 붙이고 바지 밑단을 버리고 등에는 눈싸움 자국이 남던 시절입니다.


그때와 꼭 같은 눈이 옵니다.

지금의 저는 낙상에 유의하며 안전하고 느리고 지루하게 걷습니다.



image.png 2024.10.19. 마치 책상 위의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마침내 정리하고 나자 구경을 온 동네 주민들 같은.

머리에 털이 달렸다는 것은 이상한 사실입니다. 매끈한 팔, 매끈한 종아리, 매끈한 복근, 근육이 잘 보이는 등, 그리고 갑자기, 찰랑이는 머리카락. 까맣고 얇고 심지어 찰랑거려서 귀에 닿으면 간지럽고 식사를 하다가 입에 들어가는 일도 있지만 따지자면 무해한 그것이 사람의 머리에 나 있다는 것. 그 뿐 아니라 눈두덩이 위에는 용도를 모를 눈썹이라는 것이 일종의 짧은 머리카락 버전으로(샘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빼곡하게 박혀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인중과 턱에까지 그런 털들이 전염되었다는 것. 무엇보다 누구도 그런 이상한 구조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전부 이상한 사실입니다.


놀라기에는 이르다는 듯이 그 머리카락, 물론 눈썹과 수염까지도 이상한 공통점을 하나 더 갖습니다. 한 번 의심이 든다면 연속적으로 들 수밖에 없는 의심입니다. 무섭게도, 그 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길이도 길어집니다.

맞습니다. 저는 오늘 머리를 잘랐습니다.


요즈음은 머리카락이라는 것도 패션의 범주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집 근처의 역에는 그 이상한 것을 꾸며주는 가게가 다섯 곳이 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런 가게 중에는 프랜차이즈도 있어서, 전국적으로 매끈한 머리통에 달린 수많은 까만 단백질 섬유들을 자르거나 꼬불거리도록 열을 가하거나 심해에서 떠왔다는 무언가를 바르거나 심지어는 묶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 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런 교리가 있겠습니다. 인간은 털을 타고났다. 털 중에서도 팔이나 다리에 자라는 털과 다르게 머리털이라는 것은 발육이 끝났음에도 천천히 자라는 두 가지의 것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인 손발톱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깎아내야 하지만, 머리털은 그것과는 결(하지만 머릿결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이 다르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그것을 묶고 지지고 날카로운 쇠붙이로 잘라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격주 주말 또는 격월 주말에 그 뜻을 받들러 이철수 헤어커커와 같은 템플로 모여듭니다. 언젠가 외계인이 나사의 신호를 받고 지구로 찾아온다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기록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구인들은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정수리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그 것을 알맞은 길이와 형태로 잘라내는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또한 그것에 꽤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과 식물에도 마음이 존재하며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집회들도 더러 있지만, 그들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게 머리털을 가꾸는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모르는 듯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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