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술에 취해 주무시다가 벌떡 일어나서 tv를 보고 있던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일이 잘 안되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라, 세상이 그런 걸 어떡하겠냐”
앞뒤 없이 그냥 이 말만 하시고 다시 푹 쓰러져 주무셨다. 그리고 며칠 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취업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취업이 잘 안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저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경험할수록 정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일을 할 때 온 세상이 들고일어나 나를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상대방은 그동안 이야기해오던 것과는 달리 딴소리를 하고, 차가운 세상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회와 자책.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때 왜 그걸 확인 안 했을까, 왜 미리 시작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잘못을 되짚으며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다시 후회와 자책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완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완벽하다’는 마음도 자만심이지만,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완벽하지 못했을 때 자책하는 것 또한 자만심이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 또한 자만심이다. 나는 세상의 일부일 뿐,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0년 전 아버지의 말씀이 새롭게 느껴진다.
“일이 잘 안되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라, 세상이 그런 걸 어떡하겠냐”
나는 완벽하지 않다. 많이 부족하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다른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도 듣고 내가 아쉬운 소리도 많이 하며 작아진다. 이게 다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이런 것이 다 내 잘못은 아니다. 내가 여기 있기 전부터 세상은 늘 그렇게 있어왔다. 내가 뭐라고 다 잘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뭐라고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준다는 말인가? 아버지의 말씀은 세상 앞에 겸손하고 겸허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사회생활을 앞둔 아들에게 ‘그저 세상의 일부일 뿐인 네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수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아버지도 세상의 차가움에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으셨을까? 아버지는 그 상처와 자책과 후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시고 오직 술에 기대셨다. 나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아보련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곱씹어가며, 너무 자책하지도 않을 것이고, 세상의 차가움 앞에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질 것이며, 가족과 친구에 기대 외로움을 견뎌보련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딸 곁을 오래도록 지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