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죽음을 위한 처방
나는 직계 가족 중에 의사가 많다. 아버지는 내과 의사이고,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이다. 친할아버지는 이비인후과, 친할머니는 산부인과, 외할아버지는 소아과이다. 주변에 의료인이 이렇게 많은데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의사들을 능지처참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도 어딘가 웃기다.
계속 죽음에 대해서 말해서 그런데 작년 여름에 외할아버지가 죽었다. 워낙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었던 터라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는데, 죽는 사람마냥 호들갑 떠는 건 우리 어머니였다. 우리 어머니는 계모 밑에서 컸다. 자격지심 많은 계모는 엄마를 에고이스트라 부른다. 그런데 계모 못지않게 자격지심 있는 사람은 엄마였다.
외할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로 말도 못 하고 의식 불분명한 상태로 2년을 지냈다. 그 세월 동안 엄마는 매일같이 계모한테 영상통화를 걸어서 외할아버지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을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치료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오늘은 손을 계속 움직이세요. 저번에 사드린 공으로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한 번 쥘 때마다 20초씩 세는 게 중요해요. 20초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요. 천천히 1, 2, 3, 4, 5. 한 초를 천천히 천천히 세야 돼요. 그다음에는 코어 운동. 배에다 힘을 줬다. 뺐다. 줬다. 뺐다…….”
엄마의 이런 전화 통화가 애틋하다고 착각하시지 마시라. 이런 식의 운동 처방이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이상 염불 외우듯이 중얼중얼 계속 이어졌다. 외할아버지에게 처방이 끝나면 엄마는 계모에게 다시 전화를 바꾸라고 하고, 집안 살림 검사와 처방이 이어졌다. 냉장고에는 왜 썩어빠진 야채들밖에 없냐. 왜 화장실은 오줌이 사방으로 튀어있는데 청소를 못 하냐.
엄마는 계모가 무식해서 외할아버지가 낫지 않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마음만 먹으면 외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데, 주정뱅이 우리 아버지가 허구한 날 집에서 술 마시고 쓰러져 있어서 집에 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 차도가 점점 나아지지 않자, 외할아버지는 요양병원으로 옮겨갔고, 엄마는 요양병원 의사가 멍청해서, 듣보잡 의대를 졸업해서 낫지 않는 거라고 했다. 또 다른 요양병원, 또 다른 의사를 만나면 나을 거라며, 외삼촌에게 또 다른 요양병원을 알아볼 것을 오더했다. 외삼촌이 다른 요양병원 자리를 알아보는데 차질이 생기자, 외삼촌이 멍청해서 요양병원을 못 알아본다고 말했다.
엄마가 주치의라면, 외가 식구와 요양병원 직원은 간호원이자 오더리(orderly)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는 먼발치서 전화로 오더만 내리면 되는 사람이었고, 병간호 같은 뒤치다꺼리 실무는 간호원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외할아버지가 낫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무자들의 멍청함 때문이었다.
줌으로 자문했던 미국 의사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의학은 확률 싸움이라고. 진단 내릴 때도 확률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병이 무엇인지, 확률적으로 가장 증상과 들어맞는 진단은 무엇인지 고려하고, 검사를 주문할 때도 확률을 고려하고, 약을 처방할 때도 확률을 고려한다고 했다.
웃으면서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있다. 의학에서 100%인 게 하나 있다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누군가가 낫지 않고 죽을 확률이 100%로 점점 추가 기울어질 때, 의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듯했다.
못 배워처먹은 의사들의 코미디는 외할아버지 장례식과 장지(葬地)에서도 이어졌다. 서울대를 졸업한 우리 외할아버지 소원대로 장례식은 무조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야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보니 우리 어머니만 와있고, 아버지는 와있지 않았다. 아빠는 왜 오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아니나 다를까 술 마시고 엎어져 자고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했다.
어차피 그런 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엄마는 자기 지인 의사와 다른 전문직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아빠가 있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이 자리, 저 자리 끌고 다니면서 내 자랑, 내 동생 자랑하기 바빴다. 허리 아파서 4년 동안 일도 못 한 백수 아들을 자랑할 게 뭐가 있다고 그리 난리법석인지. 엄마는 슬퍼 보였지만, 동창회 느낌이 된 장례식장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세종시 조치원읍 장지에 도착했을 때, 삐딱하게 서 있는 상조회사 직원을 가운데 두고 포크레인과 여러 중장비가 묘를 파내기 시작했다. 봉분은 조선왕조 왕자의 묘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 봉황과 용, 거북이 돌무늬 테두리 장식이 있었고, 그 장식은 외할아버지 본인이 직접 정한 것이라고 했다. 포크레인이 묘를 열심히 파내는 동안 외삼촌이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법에 따르면 매장을 할 경우, 60년 뒤에 묘를 파서 다시 화장하게 되어있다고 했다. 국민 평균 주거 공간이 4.3평인데, 매장 묘는 평균 15평이라고 한다. 매장을 고집한 외할아버지는 본인이 살았을 때 생활한 공간보다 더 큰 구덩이에 묻히고 싶어 했다.
몇 분 뒤, 포크레인이 작업을 중단했다. 외할아버지는 직접 고른 관을 묘소에 심어놨다고 했다. 일꾼들은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내 가면서 관을 파헤쳤다. 모습을 드러낸 관은 어제 제작되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대리석 석관이었고, 그 위에는 크고 아름다운 한자로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종만 박사의 죽음을 위한 처방은 다음과 같다. 60년이 넘어도 내 시신이 썩지 않을 석관 안에 묻힐 것. 그리고 100년, 200년이 넘어도 내가 의사라는 사실이 잊히지 않게 석관 위에 새겨놓을 것.
못 배운 자의 묫자리는 애처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