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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Jul 05. 2022

이제는 오해하면 그냥 그대로 둔다

오해하든가, 말든가.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신 두 분이 계셨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 분은 대학원 때문에, 한 분은 상황 때문에 퇴사를 하신 것이었다. 편하게 앞을 A, 뒤를 B로 칭하자. 


A와 B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던 분들이었다. A가 퇴사를 하면서 그의 자리를 대신할 (비슷한 직급의) 사람이 없었던 탓에 A의 자리를 얼결에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나에게 몹시 과분한 자리였고, 직무였다. 그런 탓에 꿈꿔본 적도 욕심을 내본 적도,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는 자리였다. 


퇴사하는 그들을 환송하기 위한 쫑파티가 열렸다. 우리 일이라는 게 어차피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만날 테니까, 아쉬움과 격려의 마음, 그리고 마무리를 짓는 일환에서 만들어진 '그들을 위한' 자리였다. 


쫑파티는 재밌었고 아련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간의 추억들을 공유했다. 자리가 한참을 무르익었을 때쯤이었을까. 그 자리에서 B는 A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나에게,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말했다. 



앞에서는 착하게 웃고 이래서 자리 빼앗을 줄은 몰랐지.
그렇게 안 봤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남들이 웃길래 따라 웃다가, 뒤늦게 말의 진의를 파악했다. 웃음에 감춰둔 독이 몸에서 퍼졌다. '저분... 지금 내가 A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무너무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탓에 혹시나 나조차도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었나 싶었다.  나가는 A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상황을 아는 이들이 꽤 될 텐데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다들 그 정황을 몰라서 입을 다문 건지, 아니면 굳이 정정해주고 싶지 않았는지, 그저 장난이라고 느꼈던지. 만약 그 정황을 몰랐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또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오해를 하겠구나.


 '근데 잠깐, 내가 진짜 자리를 빼앗은 건가?' 나 조차도 긴가민가, 나 스스로를 착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웃을 수가 없었다. 있기조차 힘들어졌다. 다들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A와 B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 만큼, B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 낯짝이 두껍다고 생각할 터였다. 얼마나 내가 꼴 보기가 싫을까?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가는 척 자리를 나왔다. 





곧바로 인사권자에게 양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혹시 제가 그 자리를 빼앗은 건가요?" 그랬더니, "선후관계가 다르다. A가 먼저 퇴사 의사를 밝혔고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네가 들어간 거"라고 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B가 오해하고 계신 거 같아요." 그랬더니, "오해를 정정하고 싶으면 하는 게 좋겠다"라고 대답하셨다. 


전화를 마치고 한참 밖에서 울었다. 어떻게 말씀드리지, 그분이 알고 있는 상황과 실제 상황은 다르다고, 오해라고 어떻게 말씀드리면 좋을까 차분히 말을 고르고 골라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한참을 울다가, 감정을 최대한 빠르게 진정시키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B의 얼굴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나를 그렇게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 수 있겠더라. 


내가 오해를 사고, 오해를 하는 날들. 


본인만의 판단에 의해, 달라진 상황에 의해, 평소와는 다른 나의 대답에 오해를 했던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레짐작한 그 상황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점점 더 굳혀갈 수 있었을 테지.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내가 얘기하는 '코끼리'는 사실 진짜 코끼리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오해가 겹겹이 화석처럼 쌓여서 그 사람과의 관계의 금을 만들고, 또 결국엔 관계의 단절을 만들었겠지. 


무수한 상황들과 사람들이 스쳐간다. 그렇게 '놓쳤던', 그리고 '놓침 당했던' 인연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전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게 숙명이고 당연한 거다. 그의 내면은 물론, 외면조차 회사생활, 가족관계에서 보는 단편적인 모습만 볼 수 밖엔 없으니까. 당연하고도 당연한 건데,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다.  





오해에는 사실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있는 것 같다. 바로 '내 안의 불편함'이다. 


생각해봤는데, 오해의 기저에는 저 사람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그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혹은 현재의 내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좋은 상황의 저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건 내 감정의 문제고 '나의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마음껏 '오해하고 싶도록' 내버려 둔다. '네가 그렇게 오해하고 싶구나' 그냥 내버려 둔다. 그의 말을 어디선가 전해 듣고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 분명 있을 거야. 하지만 힘을 쓰고 싶지 않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혹은 나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판단하려 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를 믿고 싶다는 믿음'으로 본인의 마음속에 나앉은 오해와 다른 이가 불어넣은 오해를 내게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혹은 그 오해를 티를 내지 않고 이해해주거나. 


그래서 나는 이제는 누군가 나를 오해하면 인연이 아니었겠거니, 생각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가볍게 먹으니 인생이 단순해진다. 잔뜩 들어갔던 힘이 빠진다. 내버려 두는 게 나를 미워하고픈 그 사람에게도, 미움 당하는 내게도 좀 더 속 편한 방법 같아서이다. 


굳이 정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 누군가는 묵직한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나의 진심은 나만 알면 되지 뭐. 누군가 나를 오해할 때 그냥 내버려 두고, 그 때마다 묵직한 나에게 또 한 번 반하면서 나 스스로의 뿌리를 점점 더 단단히 내리고, 더욱이 묵직한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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