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 담론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특히 21세기 들어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의 대규모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본소득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후원한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는 이러한 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실험 개요: 기본소득의 효과를 검증하다.
이 실험은 미국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21세에서 40세 사이의 저소득층 10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매달 1000달러(약 132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본소득이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고, 나아가 개인의 자아실현과 창의성을 촉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이 주요 목적이었죠. 동시에, 대조군으로 2000명에게는 같은 기간 동안 월 50달러만을 지급하여 비교 분석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소비 증가, 그러나 자산은 줄어들다
기본소득이 지급된 그룹에서는 월평균 지출이 310달러 증가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식료품, 집세, 교통비 등의 필수 생활비에 더 많은 돈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늘어난 소득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더 복잡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부채 증가와 재정적 안정성의 부재
우선,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의 재산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상당히 의아한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추가 소득이 생기면 저축을 하거나, 부채를 줄여 재정적 안정을 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일부 저축이 증가하긴 했으나, 이보다 더 큰 폭으로 부채가 늘어나 순자산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이 부채의 대부분은 주택 구매와 같은 자산 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할부 대출과 같은 소비성 지출로 이어졌습니다.
노동 의욕 감소: 기본소득의 또 다른 함정
이 같은 결과는 기본소득이 반드시 재정적 안정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축보다는 지출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이는 결국 재산 형성에 실패하고 장기적으로는 더 큰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기본소득이 의도한 바와 달리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 소비 확대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더욱이, 기본소득 지급으로 인해 노동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기본소득을 받은 그룹의 주당 근로 시간이 1.3시간 줄어들었고, 그 결과 연간 근로소득은 대조군보다 1500달러 낮았습니다. 기본소득이 노동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오래전부터 우려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의존하게 되면 노동 의욕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번 실험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기본소득이 단순히 소득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건강과 워라밸의 개선: 일부 긍정적인 효과
하지만 기본소득의 긍정적인 측면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건강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으며, 이는 약물 남용이나 알코올 소비의 감소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치과 진료나 동네 병원 방문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소득이 건강과 관련된 비용 부담을 줄여주고, 더 나은 건강 관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한부모 가정의 경우, 기본소득 덕분에 근로 시간을 줄이고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줍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의 경우, 기본소득이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정 내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사회 전반에 걸친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인적 자본의 향상은 불발
기본소득이 인적 자본 향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20대 참가자 중 일부는 일을 그만두고 대학에 다니는 사례가 있었지만, 30대 이상에서는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본소득이 개인의 교육이나 기술 습득에 대한 동기를 크게 자극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창업에 대한 의지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창업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 결과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로,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크게 자극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재정적 부담: 기본소득 도입의 최대 난제
기본소득의 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은 재원 마련입니다. 국민 1인당 25만원씩 단 한 번 지급하는 데도 13조원이 필요합니다. 이를 전 국민에게 매월 지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이 243조원에 이르지만, 이 예산을 전액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1인당 연간 470만원, 월 39만원밖에 지급할 수 없습니다. 이는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의 3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수준의 기본소득으로는 국민의 생계를 보장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일 것입니다.
불평등 심화의 가능성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소득 분배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지니계수가 높아져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기본소득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증세의 불가피성과 그 한계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합니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는 현재 7% 정도인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을 24.4%로 높여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많은 국민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증세를 통해 확보된 재원이 기본소득으로 돌아가더라도, 실질적인 소득 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기본소득은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그로 인해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론: 기본소득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 필요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실험은 기본소득이 기대만큼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소비가 증가하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며, 순자산이 감소하는 등 기본소득의 도입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본소득이 진정으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전 국민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