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상|가장 애잔하면서도 따뜻한 한 잔의 술

미화원 아저씨들이 마신 '소주+계란 노른자'

by 이한기


오래 전 일이다. 가장 단순하면서, 그 단순함 때문에 짠한 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술과 안주를 한꺼번에, 아주 빨리, 가장 싸게 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날, 자정을 훌쩍 넘어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 미화원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맥주잔 두 개에 소주 반병씩을 따랐다. 각자 날계란을 하나씩 깨더니 흰자는 덜어내고 노른자만 술잔 안에 넣었다. 그리고 각자 원샷. 팔뚝으로 입을 쓱 닦고는 가게를 나갔다.


눈 깜빡할 새 벌어진 일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뚜렷하게 잔상이 남아있다. 물건을 사서 밖으로 나갔더니 그 두 분은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다. 겨울철 밤 늦은 시간에 청소를 하면 몸이 언다. 그때 가장 빠르고, 싸게, 몸을 데피려면 자웅동체 같은 '술+안주'를 단번에 마시는 게 최선이다. 미화원 아저씨들이 '소주+노른자'를 한 입에 털어넣었던 건 생존을 위한 자가진단 처방이었던 거였다.


또 다른 어느 날, 자정 넘어 포장마차에서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미화원 아저씨가 포장마차에 들어왔다. 주인 아주머니가 익숙한 듯 맥주잔을 꺼내 모아둔 소주를 따라줬다. 그리고 작은 접시에 김부스러기를 내놨다. 단숨에 원샷을 하고 김부스러기를 한 줌 집어 입에 털어넣고는 고맙다는 말과 눈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애잔하면서도 따뜻하고, 다시 애잔해진다. 코로나와 장마와 태풍과 또다시 코로나와 맞닥뜨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많은 분들께 한 잔 건네고 싶다. 가끔은 치료제는 아니더라도 진통제도 필요한 법이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쏟아지는 폭우만큼이나 가슴 아픈 사진 한 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