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성인 40.7%이다. 대형 서점도 서적의 판매율이 인구감소 보다도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요즘 나타나는 괴상한 사건의 원인 중의 하나를 나는 인문학의 결여다. 층간 소음과 그에 따른 보복, 군중 속 원한 없는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과 사회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대학에서나 전공하는 학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사회의 존중이다. 동질성의 감촉이고 다름의 존중이다. 경험으로써 배운 지식으로 만이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다. 독서는 인문학을 배양시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위다.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느리지만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독서는 공기와 같은 것이고 끼니와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유로운 시간에 책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책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만나온 오래된 친구보다도 더 오래된 삶의 동반자다. 책에 의하여 학습을 하였고 책에 의하여 나의 정서가 매듭지어졌고 책에 의하여 수많은 상상을 해 왔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책 없이 사는 것은 생각만으로 불안한 일이다. 내가 독서를 한다고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만큼 부족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넉넉히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우선적으로 독서를 추천한다. 책 읽기가 힘들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자라고 한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여유가 생길 때 읽으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책의 제목이라도 알 것이라고 말을 한다. 머리맡에 둔 책을 며칠 동안 읽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책에 대한 흥미가 없는 것이니 다른 책을 사서 교체하라고 한다. 그러면 책꽂이에 책은 쌓일 것이고 책을 고르기 위해서 온라인 서점이나 동네의 서점을 들를 것이다. 그리고 여러 책을 구경할 것이다. 그렇다 보면 책에 대한 관심이 쌓일 것이다.
나에게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자라는 권유를 듣고도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다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때 내가 권유한 방식을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적으로 이 방법을 통하여 책을 읽고 있는 몇몇의 주변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한술 더 떠 나에게 그들이 양서로 꼽은 책을 권유하기도 한다.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때로는 다 읽은 책을 주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책일 것이라고 하며 새 책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나는 그때 소양이 넉넉해진 그들을 느낀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어본다. 나의 질문에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고, 요즘 책을 못 읽는다는 사람도 있고, 책을 사기만 해놓고 읽지 못해 쌓아만 놓는다는 사람이 있고, 베스트셀러를 읽는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질문을 통하여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구나, 못 읽는 사람은 있어도 안 읽는 사람은 없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해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는 시절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요즘 누가 책을 읽어!' 하는 사람은 없다.
2021년 통계청 기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율은 전체 47.5%이고 종이책은 40.7% 전자책은 19.0%이다. 2019년에 비하여 종이책 독서 비율은 8.2% 정도 줄었다. 이삼십 대에서는 전자책의 독서비율이 10% 가까이 감소한 반면에 전자책은 3.5% 증가하였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기업의 전자책 마케팅과 접근성의 용이로 전자책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는 형태이다. 나의 책 <책 한 권 들고 떠나는 여행>을 발간하였을 때 고등학생인 조카는 나에게 곧 전자책 발행 여부를 물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자책이 대세라고 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종이책 독서율은 87.4%, 전자책 독서율은 49.1%를 기록했다. 2년이 흐른 지금은 더욱 전자책 비율이 높아졌을 것이다. 그만큼 책은 더 가까이 전파를 타고 각종 단말기 안까지 도착해 있는 상태다. 오디오북이라는 것을 이용하면 책을 읽어주기까지 한다.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원전 3.300년 전에 만들어졌던 이라크 쐐기문자, 중국의 갑골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신성문자와 민중문자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쓰인 로제타스톤은 모두 읽히기 위해 힘겹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집트에 가지 않아도 거북이 등껍질을 찾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공기처럼 많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4년도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 예산 58억 8500만 원이 전액 삭감되었고 이 사업에 부여된 예산코드가 아예 폐지되었다. 그 예산이 나의 독서량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날벼락같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예능 프로 중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고 외치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국가가 그렇다면 지상파를 비롯한 매체에서라도 책 읽기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국민 독서 통계가 발표되는 2024년 1월, 2025년 1월에는 헤드라인 뉴스로 우리나라 국민 독서율 증가 토픽이 보도된다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소식보다 더욱 기쁜 뉴스가 되지 않을까? 독서문화에서도 K-컬처가 생겨나지 않을까? 독서가 비로소 국력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