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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Apr 05. 2024

이겨내는 삶

키가 자라면서 발걸음 수가 줄었다. 어릴 적 열 번을 디뎌야 했던 발걸음은 성인이 되어 절반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 보폭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신체가 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같은 걸음을 걸어도 예전처럼 멀리 가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발을 디뎌야 한다.

스무 살의 십 년 후면 서른, 서른 살의 십 년 후면 마흔, 마흔 살의 십 년 후면 쉰, 쉰 살의 십 년 후면 예순, 예순 살에게 십 년 후면 일흔,…. '쉰 살의 십 년 후'부터 행각 하니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남은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고갈되어 간다. 백 세를 넘겨 살 수는 있겠지만, 나의 건강 그래프는 40대 중반부터 하강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나둘씩 신체적 불쾌감이 점점 더해진다. 회복되는 증세도 있지만 쇠퇴해 가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을 생각해야 한다. 건강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의 총기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

10여 년 전 큰 포부를 안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사회적 위기에 성과가 줄어드는 요즘이다. 내가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간다. 시간적 금전적 여력이 점점 고갈되어 간다. 위기가 온 것이다. 사업을 정비해야 한다. 사업의 기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소상공인에게는 괴물 같은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 AI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생활 깊숙이 이미 파고들고 있다. 많은 사회적 시스템이 변한다고 예견한다. 서빙 로봇이 낯설지 않다. 로봇 바리스타가 신기하지 않다. 명령만 입력하면 그림이 그려지고 영상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불확실한 미래까지 당당하게 예측해 의견을 낸다. 봄인데도 이사 차량은 볼 수 없다. 맥주 한 병에 6천 원 하는 술집도 많다. 식당 메뉴판은 가격표가 덧대어져 있다. 불평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적응해야 한다. 앞으로 일이 년 후면 많은 직업과 일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나처럼 작은 사업가는 지켜만 보고 있는다면 서럽게 문을 닫을 확률이 높다.

개업, 이전, 출간 등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들어온 화분들이 있다. 처음 사무실을 열었던 때부터이니, 12년이 흘렀다. 수십 개 중 말라 죽지 않고 남아있는 화분은 두 개뿐이다. 아니, 두 개의 화분이 있다. 아침 그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봄이 되니 밑동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난초는 이미 2월에 화려한 꽃을 피워 공간 가득 향을 풍기기도 하였다.

힘겨워지는 사업도 다시 밑동부터 수분을 끌어올려 싹을 틔워야 한다. 꽃을 피워내야 한다. 날 밝으면 창밖으로 촉수를 들이미는 두 개의 화분처럼 살아야 한다.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새로운 아침 햇빛을 받아 신선한 산소를 퍼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세월에 움츠리지 않고 심신을 다스려야 한다. 시대의 그림자 아래 마냥 머물러있지 말고 담벼락 넘어 비추는 햇살을 찾아 촉수를 뻗어내야 한다. 오늘 아침 햇살은 참으로 밝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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