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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모 Jan 08. 2023

두 개인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하나를 안 줘

아빠는 신장 한쪽이 없다

하루는 아빠와 목욕탕을 갔는데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있을법한 칼자국이 있어 깜짝 놀랐다. 사연 있어 보이는 흉터에 아빠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는 좀 그래서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 몰래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 배에 칼자국이 있던데 뭐야?"

"아 그거 아빠가 신장 하나를 대금 선생님한테 기증했잖아"


아빠는 한때 대금이라는 악기에 꽂힌 적이 있는데 대금을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한테 신장 한쪽을 줬던 거였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떻게 같은 가족에게도 선뜻 내어주기 힘들 것 같은 신장을 줄 수 있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난 아빠에게 달려가 이 이야기에 대해 캐물었다.


대금 선생님께서는 원래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육자셨다. 어느 날 만성신부전증이라는 병을 갖게 되었고 더는 강단에 설 수 없을 만큼 체력이 악화되자 제2의 직업을 위해 대학교에서 대금 교육 정규 과정을 수료하셨다.


틈틈이 대금 과외를 하시며 생계를 유지하셨고 제자들 중 한 명이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선생님께서 나이는 본인보다 어렸지만 정신적으로 자기보다 성숙하고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을 존경한다 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의 건강은 생사가 걸린 만큼 악화되었고 대금 선생님과 사모님은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본인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차마 미안해 받을 수 없으시다며 처음엔 거절하셨다.


이후 아빠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이 시기의 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부도만으로도 힘든 그 시기에 다시 한번 더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말한 것도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아빠가 선생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한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선생님 저는 부도가 나고 인생을 포기하려 했었습니다. 그때 자살을 하지 않고 살아갈 결심을 한 저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이미 한번 인생을 포기하려고 한 사람이 뭐가 무섭겠습니까? 저는 아무런 미련이 없으니 제 신장 한쪽을 선생님께서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눈앞에 닥친 상황과 아빠의 부탁에 마지못해 선생님은 아빠의 신장을 기증받으셨지만 결국 운명하시고 마셨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난 누군가를 위해 내 신장을 나눠 줄 수 있을까? 선뜻 입이 떨어지진 않지만 남의 것을 취하는 삶 보단 베풀 수 있는 삶이 가치 있다고 느껴졌고 이런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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