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오랜 글을 읽고 쓰기만 해도 편안하고 차분해집니다. 한문 시간에 배운 글이 좋아 다른 책 찾아 읽다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취업이 잘 안 된다며 여러 분께서 마음쓰셨지만 십대 후반의 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용감했지 싶습니다. 다행히 수능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와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한문은 또 달랐습니다. 『통감절요』 외우며 역사를 배웠고, 한국 한문학의 다양한 작가들 만나다 이덕무에 푹 빠졌습니다. 교원임용고사라는 터널을 넘어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아끼는 글을 눈 맑은 아이들과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오늘날과 맞닿은 점을 찾을까' 하루하루가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늘 맑은 날만 있지는 않습니다. 어려워하는 눈빛, 입시 비중 낮다고 밀쳐 놓는 몇몇 학생 보면 작은 어깨가 더 내려앉곤 했습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공부에 시달리는 마음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온 지금은 아이들 상황과 눈높이에 맞게 한 자 한 자 풀어내려 노력합니다.
저에게 한문은 마음의 쉼터입니다. 공책이나 수첩에 옮겨 쓰면 즐겁고, 옛사람의 글과 삶에서 오늘날을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좋아하는 공부를 어린 잎 닮은 다음 세대와 함께 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복된 일입니다. 학습지 검사와 지필평가 출제가 '일'로 다가올 때마다 아주 오랜 설렘을 기억하겠습니다. 열여덟 어느 날 칠판 글씨 쓰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겠습니다.
* 사진은 1995년 1월 30일(월) 섣달 그믐날 일기장 한켠에 옮겨 쓴 글입니다. 해마다 섣달 그믐이 되면 이 글이 떠오릅니다. 한문 교과서를 보니 1993년 8월 27일(금) 6교시에 배웠습니다. 독음과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年少者(연소자)가 歷訪姻親長老(역방/인친/장로)를 曰(왈) 舊歲拜(구세배)라.
自昏至夜(자혼/지야)에 街巷行燈(가항/행등)이 相屬不絶(상속부절)이라. (중략)
巷間婦女(항간/부녀)가 用白板(용/백판)으로 橫置藁枕上(횡치/고침상)하고
對踏兩端(대답/양단)하여 相升降而跳數尺許(상승강이/도/수척허)하며,
以困頓爲樂(이곤돈/위락)을 謂之女跳板戱(위지/여도판희)하고 至歲初如之(지세초/여지)러라."
-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洪錫謨(홍석모)
"나이 어린 사람이 인척과 친척, 웃어른들을 두루 찾아 뵙는 것을 묵은 세배라고 한다.
저물 때부터 밤까지 길거리의 등불이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
항간의 부녀들은 흰 널조각을 사용하여 짚베게 위에 가로로 놓고
마주하여 양 끝을 밟아 서로 오르내리면서 몇 자 가량 뛰어오르며 (*1자 : 30.3cm)
피곤해짐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을 널뛰기 놀이라 하고, 정월 초까지 이와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