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 높은 시간

by 스마일한문샘

"그렇게 3년. 밀도 높은 시간을 살았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7쪽) 늦은 밤 글 읽다 제 삶의 '밀도 높은 시간'은 언제였나 돌아봅니다. 가장 오랜 기억은 열일곱 어느 날입니다. 교재 없는 EBS 교양한문에 꽂혀 주말마다 방송강의를 비디오로 녹화하며 공책에 옮겨 썼습니다. 비디오테이프에 강의 꽉 차면 처음부터 다시 녹화하며 필기하고, 테이프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고.


다행히 다음 해에는 교재가 나와 한결 편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때 그 공책과 교재가 없어져 종종 아쉽지만, 방송 들으면서 손으로 쓰고 정리하던 시간들은 마음 한곳에 까망, 파랑, 빨강 볼펜 글씨로 남았습니다. 그뿐일까요. 1학년 겨울방학에 교실에서 공부하며 남몰래 칠판에 한문 교과서 본문 쓰고 수업하던 하루하루, 그해 내내 학교 게시판에 고사성어 쓰던 토요일은 얼마나 따뜻하고 뿌듯하던지!


대학에서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첫 여름방학, 과 학회에서 선배, 동기들과 『통감절요』 예습하느라 교회, 동아리, 아르바이트 안 가면 거의 학교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한문의 숲 사이로 자전 하나 달랑 갖고 한 자 한 자 찾아가며 풀이하려니 해석본 보며 공부하는 것보다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그러다 뭔가 말이 된다 싶으면 '우와!' 글이 술술 들어오면 '아싸!' 틈틈이 도서관 책 읽으며 그 여름 참 잘 살았습니다.


제 삶에서 밀도 높은 시간은 대부분 한문 공부하고 마음에 새기던 나날이었습니다. 꿈꾸던 대로 한문선생이 되었지만 긴 휴직과 복직, 육아와 업무에 바쁘면서 그때 그 순전함과 가열찬 첫마음이 가끔 풀리고 흐려집니다. 반짝이는 기억들을 차곡차곡 적으며 인생의 밀도, 스스로에게 뿌듯하던 습관을 되찾고 싶습니다. 옛글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마냥 기쁘기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기를!

늦은 밤 『고문진보 후집』 읽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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