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왜 한문이 좋으세요?"

by 스마일한문샘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한문에 빠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렇게 많은 한자들을 다 외우셨다는 건 정말 좋아하셔서인 것 같아요☺️"

원격수업 과제 검사하다 한 학생 글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잊기 전에 차근차근 씁니다.


Q. 어떻게 한문에 빠지셨어요?


A. 그냥 좋았어요. 어릴 때 집에 있던 천자문 책, 아버지가 월부로 사 오신 한국교육출판공사 사서오경 해설집, 한국해학소설집 같은 책들을 뜻 모르고 틈틈이 읽었습니다. 도서관도 없고 집에는 어린이 책이 적어 책에 늘 목말랐거든요. 그때 세로줄 전집 중 『춘추』 상, 하권을 가장 많이 봤습니다. 짧은 원문과 풀이보다 길게 붙은 중국 역사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초등학교(우리 때는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한자경시대회를 했어요. 아는 한자, 음, 뜻을 종이에 쭉 쓰는 형식이었지 싶은데 어쩌다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자가 더 좋아졌어요.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 "학자여우모(學者如牛毛) 성자기린각(成者麒麟角)" 같은 구절은 지금도 생각나요.


Q. 어떻게 한문선생님이 되셨나요?


A. 고1 때 한문선생님 찐팬이었어요.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 맑고 따스한 어른이셨습니다. 조선 선비 이덕무를 닮은. 선생님 덕분에 한문이 더 좋아졌고 선생님 같은 한문선생님이 되고 싶어졌으니 평생 은인이지요. 그해 가을 진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다 학교 진학자료집에서 한문학과와 한문교육과를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한문학과만 있어 고2 여름부터 '부산대 한문학과-교직이수-임용고사'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꿈꾸던 곳에 갔고 임용고사 가산점 얻으려 국어국문학과도 부전공했습니다. 교직에 부전공에 학점이 넘쳐나 바쁘지만 뜻깊은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임용고사는 네 번 준비했습니다. 꽤 멀리 돌아온 만큼 더 좋은 한문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결혼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연수받거나 자기계발할 시간이 많지 않아, 틈틈이 책과 여러 자료로 공부하면서 선한 영향 나누려 노력합니다.


Q. 왜 한문이 좋으세요?


A.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요. 어린 날에는 우리말로 번역된 옛날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짧은 글부터 한문 원문을 맛보면서 옛글에서 우러나는 멋과 향기에 푹 젖어들었습니다. 어떤 낱말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사전 찾아 공부하면 생각이 더 잘 정리되는 듯했어요. 어른이 되어 만나는 한문은 삶을 부드럽게 하는 힘입니다. 화날 때, 흔들릴 때 옛글 한 자락을 읽고 쓰면 마음이 차분하고 따뜻해집니다. 이런저런 일로 쌓인 분노도 수그러들지요.


한문은 우리 역사에 숨은 보물입니다. 한글을 아끼고 쉬운 한글 쓰려 노력하면서, 한자와 한문은 한글과 함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날개라고 생각해요. 한글과 한문에는 각각 그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저의 꿈은 한자와 한문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과 저를 아는 분들이 한자를 알아가며 느끼는 성취감, 한문으로 칭찬받고 위로받은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작고 따스한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친정 한켠에 꽂힌 책들. 가끔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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