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1783년)에 내가 내각에 들어가 검서관 이무관(李懋官)과 정답게 지냈는데, 무관도 나를 좋아하였다. 언제나 이문원에서 돌아와 고요하고 한가할 때면 소나무 그늘에 자리 깔고 대나무 숲 바람 소리 들으며 무관과 함께 술 마시면서 문장을 논평했다. 무관은 여윈 몸에 어깨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물 흐르듯 말하였다.
- 윤행임(尹行恁), <아정유고(雅亭遺稿) 서(序)>
癸卯, 余入內閣, 喜與檢書李懋官遊. 懋官亦余喜也.
癸卯, 余入內閣, 喜與檢書李懋官遊. 懋官亦余喜也.
계묘, 여입내각, 희여검서이무관유. 무관역여희야.
每歸院靜暇, 藉松陰而聽竹韻, 飮懋官酒, 論文章.
매귀원정가, 자송음이청죽운, 음무관주, 논문장.
懋官瘦骨支衣, 竦肩引吭, 灑灑語不已.
무관수골지의, 송견인항, 쇄쇄어불이.
瘦 파리할 (수) 竦 공경할, 설 (송) 吭 목 (항)
內閣 : 규장각(奎章閣). 조선시대 왕실 도서관이면서 학술과 정책을 연구한 부서.
懋官 : 이덕무의 자.
院 : 이문원(摛文院). 규장각의 별명.
瘦骨支衣 : 몸이 너무 여위어 옷을 겨우 버틸 정도임.
灑灑 :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양. 사물에 얽매이지 않아 시원한 모양.
* 『청장관전서』(한국고전번역원)를 참고하여 다시 번역했습니다.
페이스북에는 '과거의 오늘'이 있습니다. 5년 전 이맘때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꽤 먼 곳에서 날아온 친구가 고마워, 아이들 보는 틈틈이 밥 먹고 차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달력 보니 오래 만난 선생님 생일입니다. 잊기 전에 축하 인사 드립니다. 아이들 낳고 돌보느라 헉헉대는 나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순간은 따뜻하고 잔잔한 그림으로 남습니다.
이덕무의 친구들은 나이가 다양합니다. 박지원은 4살 많지만 유득공은 7살 적습니다. 박제가는 9살, 이서구는 13살 어리고 윗글 쓴 윤행임(1762~1801)은 무려 21년 연하! 노론 시파 윤행임과 서얼 이덕무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정답게 지냅니다. "무관도 나를 좋아하였다[懋官亦余喜也]." 4년 전 9월에 이 글 읽다 눈시울이 젖어들었습니다.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나는 건 복입니다. 윤행임은 이덕무의 문집에 머리말 쓰면서 13년 전 그와 함께 일하며 이야기하던 나날을 새록새록 떠올립니다. 3년 전 독감으로 먼 길 떠났지만 오랜 벗은 늘 마음 한켠에 있습니다. 글로나마 '나를 깊이 알아주던 마음[相予之深]'에 보답하려 한 자 한 자 붓을 듭니다.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김려령,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77쪽)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던 사람, 고마운 기억을 되살리는 그들!
사진은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