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기억이 기록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고1 때 EBS 교양한문 들은 건 맞는데 수첩 보니 1994년 1월부터입니다. TV만 생각하다 까마득히 잊었던 '한문 교육방송(radio)' 메모에 얼마나 반갑고 부끄럽던지요. 방송을 어떻게 찾았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방학때 라디오 듣다 '이거다!' 싶어 꾸준히 들었던 듯합니다. 1월 27일 목요일에 처음 듣고 2월 3일부터 공테이프에 녹음했습니다.
3월부터 방송 개편으로 라디오 교양한문이 없어져 아쉬웠는데, 4월 24일 주일에 EBS TV에서 교양한문을 찾았습니다. 김학주 선생님 강의 들으면서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나중에 다시 보며 찬찬히 필기했습니다. 한 자 한 자 옮겨 쓸 때마다 두근두근하고 교실 칠판에 한문교과서 본문 쓸 때와는 또 다른 뿌듯함이 차올랐습니다. 그렇게 꼬박꼬박 주일 오후를 채워나갔습니다.
강사님이 이명학 선생님으로 바뀌면서 EBS에선 처음으로 교양한문 교재가 나왔습니다. 추석 용돈 아껴 문우당서점에서 책 사던 날 수첩 한켠에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김선생님 강의에 옛글이 많았다면 이선생님 시간에는 고사성어, 생활한자어 등 실용적인 내용이 늘었습니다. '결혼기념일 관련 한자어'처럼 자주 쓰이는 말은 지금도 종종 책장까지 떠오릅니다.
10년 후 교육대학원에서 이선생님 강의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쑥스러움 많아 인사만 드리고 말 한 마디 못했는데, 회식 자리에서 선생님이 EBS 교양한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저 고등학생 때 그 강의 들었어요. 방송 들으며 한문교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그 교재는 서른 즈음 잃었지만, 성실하게 필기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던 진지함은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1994년 4월 23~24일 하나수첩입니다.
* EBS 교양한문 Season 2004
- 이영주 선생님 강의인데 화면 구성이 김학주, 이명학 선생님 때와 비슷합니다. 물론 내용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