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일에 소소한 뜻과 기억을 담아내는 버릇이 있습니다. <벌새>와 <응답하라 1994>의 어느 날이었을 8월 19일도 그렇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오랜 꿈과 남모를 고민, 숱한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나름 경건하게 하루를 맞이합니다. 십대 후반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하!' 고개를 끄덕이겠지요.
열일곱 어느 날 한문에 푹 빠졌습니다. 원래 좋아했지만 전공까지 생각한 건 은사님 영향이 컸습니다. 맑고 따뜻하며 책과 한문, 아이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어른. 그해 가을 담임선생님께서 멀리 이민 가시면서 한문선생님이 우리 반 중간담임이 되셨습니다. 1주일에 한 시간 뵙던 선생님을 매일 뵐 때마다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익어가던 꿈은 뜻밖의 브레이크에 멈칫했습니다. 학교 진학자료집에서 한문학과와 한문교육과를 찾아보다 교육과정 중 '불경강독'에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유교 경전에 불경까지 봐야 하는데, 기독교인이 한문을 전공해도 괜찮을까?' 교회 전도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하지 마라." 부모님과 은사님도 "한문과는 취업 안 되는데 국문과나 중문과는 어떠니?"
지금이라면 교회에서 조금 달리 말해 주시는 어른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진득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좋고, 하고 싶다'와 '이 길이 하나님의 뜻 아니면 어쩌지?' 그러면서도 빈 교실 칠판에 한문 교과서와 수업 내용을 또박또박 판서하고, 새잎 돋는 봄날부터 미술선생님 추천으로 학교 게시판에 고사성어를 썼습니다.
8월 19일 금요일 저녁. 그날도 교회 고등부 임원기도회에 갔습니다. 고등부를 위해 기도하면서 남몰래 제 기도제목도 올려 드렸습니다. 그 누구도 답해 주지 않아 하나님이 직접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특별계시는 없었지만 잔잔한 확신이 밀려왔습니다. 낯선 길을 걸어도 괜찮겠단 믿음!
그때부터 흔들림 없이 한문 공부에 뜻을 두었습니다. 한문교육과는 대부분 먼 곳에 있어 한문학과에서 교직 이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학문 - 어떻게 할 것인가?』 한문학 부분을 꼼꼼하게 읽고, 중3부터 손 놓았던 수학 공부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첫마음의 떨림을 기억하면 다른 부분도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제게는 '한문'이 그렇습니다.
학과 관련 자료는 고1 가을에 처음 보고
고2 봄날 다시 보며 정리했습니다.
쑥스러운 부분은 웃는 얼굴로 모자이크! (199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