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정기시험 전날 "선생님, 저희 반 첫 시험인데 응원 말씀 부탁드려요." 칠판 보니 학급 회장의 "얘들아, 힘내자"와 담임선생님, 다른 교과 선생님 응원 말씀이 빼곡합니다. 왼쪽 아래 빈자리에 "盡人事(진인사) 待天命(대천명)"을 쓰고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 얻기를!"을 덧붙였습니다. 사인할 때 쓰는 웃는 얼굴과 하트도 그렸습니다. 몇몇이 "우와~" 수업 마치고 다른 아이가 복도에서 "선생님, 저 진인사 대천명 알아요."
작년 체육대회 앞두고 반티에 선생님과 친구들 사인 받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교무실에 사인 받으러 오면 그 아이에게 잘 맞을 만한 말을 찾아 녹색 플러스펜이나 사인펜으로 꼭꼭 새겼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日就月將(일취월장)", 또 다른 아이에게는 "有志者(유지자) 事竟成(사경성)." "무슨 뜻이에요?" 아이들 상황에 맞게 풀어 주면 "감사합니다!" 졸업 앨범 갖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도 뜻이 깊고 희망찬 성어와 명언을 선물했습니다.
한문을 좋아합니다. 옛글에 푹 빠져 한문교사가 된 만큼 오래된 무언가의 빛깔과 향기를 학생들과 나누는 일을 사랑합니다. 한자에 이야기를 담고, 어휘와 반짝이는 일상을 이으며, 성어와 문장에서 옛글과 오늘이 마주치는 순간을 찾아 의미 있는 기억을 쌓아갑니다. "한문 왜 해요?"를 달고 살던 아이가 "선생님, 3학년에 한문 없어 아쉬워요."라며 배시시 웃을 때 살짝 들뜨는 저는 '한문 샘' 세 글자가 반갑고 뿌듯합니다.
올해는 몇 년만에 학생들 한자 이름을 풀이합니다. 학기 초에 한자 이름을 받아 한 시간에 한두 명씩 이름 한자와 그 안에 숨은 뜻을 알려 줍니다. 한자를 모르고 뜻과 음만 아는 아이에게는 한자를 찾아 "이 한자 맞아?"라고 묻습니다. 한동안 수행평가 진도 맞추느라 종종 건너뛰었는데, 학생들이 은근히 기다려 1차 정기시험 마치면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한문 샘이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 제자들과 행복을 저축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