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 책을 펼쳤습니다. 기억할 일 찾아보려 고등학교 교과서를 여니 머리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1. 한자 사용의 범위는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1972. 8. 16. 문교부 제정)를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는 이 기준에서 벗어난 약간의 글자에 *표를 붙여 구별했다." "2. 제재의 선정은 옛 한문 기록을 고루 다루되, 우리 나라와 중국의 한문 고전을 6 : 4 정도의 비율로 본문을 구성하였다." 교과서 쓸 때 하던 고민과 꼭 닮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한자어가 어렵습니다. '倍達民族(배달민족)' '弘益人間(홍익인간)'은 한문 느낌 나는데 '貯蓄奬勵(저축장려)' '路幅擴張(노폭확장)'은 왠지 낯섭니다. '그때 한문 가르쳤으면 지금보다 수업하기 더 어려웠겠구나!' 메모 읽으려다 본문에 눈이 가는 저를 봅니다. '성어와 고사' 단원부터 아껴 읽은 글과 말이 보입니다. 메모도 제법 늘었습니다.
고1 봄부터 고3 가을까지 공부한 한문 교과서는 저의 보물입니다. 꿈을 키운 흔적, 은사님의 다정함, 미숙한 제가 점점 자라가는 과정이 오랜 책에 있습니다. 한문교사가 되고서는 수업 준비할 때 교과서를 열어 봅니다. 2022 개정 교과서 집필할 때도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해묵은 5차 교육과정 한문책을 펼쳤습니다. 옛글과 오늘이 맞닿는 순간을 어떻게 풀어내고 담아낼지 생각을 정리하면서 길을 찾아갑니다.
저를 아는 분들이 "교과서 저자가 뭘 걱정해요?"라고 하시지만 교직 17년차여도 수업은 늘 새롭고 어렵습니다. 1주일에 한 시간, 발간 볼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생님 말씀 듣던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지금 만나는 제자들에게도 그런 기쁨을 선물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한자와 한문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돕고 싶다는 꿈, 어린 날 색펜으로 필기하며 꼭꼭 담은 소망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