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투명해졌다 나는 여름엔 수영을 했다 물 밑에 빛이 가득했다
강 밑에 은하수가 있었다
-'여름' 전문 (강지이,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창비시선, 2021, p.10)
시간이 지났고 우유는 상했다. 그러나 그 우유는 지금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난다. 그 냄새에 가 닿아 잠기는 듯해서. 그래서 책을 골랐다.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는 나와 너,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외로웠다가 가득 찼다가 한다. "그 장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시절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고 나면 지금-여기에서 과거의 것을 바라보는 강지이의 기억이 나열된다. 기억의 공간에서는 대부분 "서랍에 저를 넣어두고 다니며/서랍만큼만 생각하('서랍')"면서 경계 지어 지거나, "그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복도에 서 있('남겨진 사람들')"으면서 외로워진다. "아무리 말려도 건조해지지 않는('베개')" 베개를 베고 자는 이들은 서로를 위로할 수 없고, “모두 같은 물을 내려다보(‘궤도 연습3’)거나, “창밖을 보고 있어//내리지 않(‘궤도 연습2’)”거나, “푸른 곳으로 나오고 다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궤도 연습1’)”가면서 끊임없이 일상을 반복해간다. 그렇게 강지이는 연결되지 못하거나 함께 있어도 외로웠던 무수한 관계를, 단조롭고도 건조한 기억 안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마치 심연에 잠기듯 깊이 잠겼다가 빠져나오곤 하는데, 그 부드러운 유영의 형태가 아름답다. 나뭇가지처럼 자라나는 무수한 기억은 점점 자유를 찾는다. 기억에 머물렀던 관계는 하나둘씩 놓아지는데, '자장가'에서의 고양이가, 'Turquoise'에서의 "터콰이즈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꼬리"가, '돌고래'에서의 "고목에 기대 세워진/낡고 먼지 하나 없는/아기 나무 의자'의, '밤나무 뒤 동물의 형형한'에서의 "취미가 되고 싶지 않았던/피아노"가 그렇다. 유유히 걷던 시의 화자, 강지이는 이내 "대교에 불을 지르고 깨어난"다. 비로소 수평으로 함께 잠기는 일. “큰 공간은 우리의/것이에요.(‘VOID’)” 강지이가 말한다.
강지이,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창비시선, 2021, p.101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많길
나를 굳이 구하러 오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당연하길
누군가의 당연한 행복을 이상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
응. 왜냐하면 나는
이미 대교에 불을 지르고
깨어난 지 오래되었다
-'여름 샐러드' 부분
(강지이,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창비시선, 2021, p.101)
기억이 유독 선명해지는 겨울이다. 괜스레 공허해지는 이때는 왁자지껄 해야만 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고,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런 것들이 익숙한 계절이다. 그래서 혼자 남은 시간에 과거의 기억이 더 선명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꺼내 놓은 과거의 조각은 대부분 아쉬운 감정에 가까웠다. 후회보다는 조금 가벼운 그 단어. 끝이 보이는 것에 미련을 태워보았다거나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날카로웠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 조각은 꼭 그게 최선이었어,로 끝이 난다. 그 정도 했으니 다행이지, 하는 것. 그러면서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 이토록 차분히 조각들을 매만지다 보면 더 단단해지는 순간이 온다. 강지이의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는 온전히 나를 위해 서서히 죽어 가겠다던, 나의 언어를 다시 마주하게 했다. 나, 너, 우리의 관계에 익숙했던 내가, 다시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되는 것. 강지이가 그려 놓은 초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나의 기억들은 자꾸만 자라났는데, 그 기억들이 아팠든, 외로웠든, 기뻤든, "밀가루 냄새가 났"든, 강지이의 시를 만나 다시금 온전해졌다. 그렇게 수평으로 함께 잠기는 순간의 묘한 외로움이 섞인 강인함을 사랑한다.